항목 ID | GC093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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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仁八 |
영어공식명칭 | Jeong Inpa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원기 |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정인팔(鄭仁八)[1881~?]은 1881년(고종 18) 정읍군 동면 용암리(用岩里)[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해산 군인·유생·평민들이 참여하는 후기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정읍 지역에서도 이성화(李成化)·김영백(金永伯)·박춘화(朴春化)·신보현(申甫鉉) 등이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고, 이순화는 1909년 1월 이성화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이성화 의진에 참여한 직후 정인팔은 중장군 박인곤(朴引坤)[또는 박춘화(朴春化)] 휘하에서 십장(什長) 직책을 수행하며 정읍과 고부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09년 2월 초순 정읍 연지리에서 일본인 마츠키[松木]의 습격을 받은 정인팔과 박인곤은 역습을 가하여 마츠키를 살해하였다. 3월 8일에는 고부군 장순면 연지평(蓮池坪)[현 정읍시 정우면 초강리 연지평]에서 고부헌병분견소 헌병보조원 김남규(金南奎)의 습격을 받았으나 정인팔과 박인곤이 김남규를 몽둥이와 괭이로 때려서 살해하였다. 정인팔은 1910년 3월 2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3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 송치된 후 재판을 받고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인팔의 공적을 기려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