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88
한자 韓興三
영어공식명칭 Han Heungsa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 10월 15일연표보기 - 한흥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 2월 10일 - 한흥삼 정성현 의진 가담
활동 시기/일시 1909년 9월 13일 - 한흥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12년 7월 11일연표보기 - 한흥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한흥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거주|이주지 제내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오성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제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한흥삼(韓興三)[1875~1912]은 1875년(고종 12) 10월 15일 정읍에서 태어나 태인군 옹지면 제내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오성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6월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해산 군인·유생·평민들이 참여하는 후기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정읍 지역에서는 김영백(金永伯)·이성화(李成化)·박춘화(朴春化)·신보현(申甫鉉) 등이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고, 한흥삼도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정읍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통감부와 일본 군경은 무력 진압책을 펼침과 동시에 회유와 귀순에도 힘을 기울였다. 1907년 12월 14일에는 해당 지역 관헌의 감시 아래 면죄문빙(免罪文憑)을 발급하여 주고 생업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귀순조칙(歸順詔飭)」을 발표하여 의병들의 귀순을 유도하였다. 한흥삼은 1908년 10월 태인군수에게 귀순 신청을 하고 면죄문빙을 발급받았으나, 1909년 2월 10일 정성현(鄭成玄)의 의진에 참여하여 다시 의병 활동을 재개하였다.

한흥삼은 정성현 의진에 가담한 이후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김제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나가다가 1908년 8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09년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한흥삼은 1912년 7월 1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한흥삼의 공적을 기려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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