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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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桓奎 |
영어공식명칭 | Bak Hwangyu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12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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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박환규 정읍 읍내 만세 시위 추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2일 - 박환규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5일 - 박환규 전북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징역 1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58년 2월![]()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연지동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연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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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묘소 | 국리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정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환규(朴桓奎)[1886~1958]는 1886년 12월 5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고 3월 16일 태인에서도 김현곤(金炫坤)·송수연(宋洙淵)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박환규는 이익겸(李益謙)·김회근(金會根)과 함께 정읍 읍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이어 갈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3월 23일 정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마련하였다. 또한 이익겸과 함께 천도교·기독교 교인을 동원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하지만 3월 22일 거사 계획이 발각되어 박환규와 이익겸은 정읍 헌병분대에 체포되고 준비하여 두었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는 압수되었다.
1919년 5월 15일 전북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환규는 구금되어 있는 동안 극심한 고문을 받고 후유증으로 불구의 몸이 되었으며, 1958년 2월 정읍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박환규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환규의 공적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