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714
한자 林赫圭
영어공식명칭 Im Hyeokgy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1년연표보기 - 임혁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임혁규 산외공립보통학교 부지 기부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임혁규 조선어사전편찬 후원회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임혁규 조선어학회사건 연루
몰년 시기/일시 1964년연표보기 - 임혁규 사망
거주|이주지 평사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활동 사항]

임혁규(林赫圭)[1891~1964]는 1891년에 태어나 아버지 임병욱을 따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로 이주하였다. 임혁규의 집 사랑채인 금사정(錦沙亭)에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李堈)이 자주 들렀고 현판도 써 주었다고 한다.

1924년 평사리에 있던 사립 보통학교가 경영상의 곤란으로 폐교되기에 이르자 면의 유지들이 모여 공립학교 인가를 신청하고 기부금을 모았으나 학교 부지를 마련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임혁규가 이기준과 함께 각각 밭 370평씩을 기부하여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고, 1925년 산외공립보통학교[현 산외초등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1921년 우리말 연구와 사전 편찬에 목적을 두고 조선어연구회가 출범하였다. 조선어연구회 회원들은 조선말 사전이 있는 한 조선말과 조선 겨레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조선어사전 편찬을 준비하였다. 임혁규는 편찬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하기 위하여 1936년 조직된 사전 편찬 후원회에 이우식·김양식·장현식·이인·서민호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사전을 편찬함으로써 민족어를 영구히 유지하는 일은 나아가 민족정신을 앙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임혁규는 1942년 10월 일제가 자행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3년 3월에 함경남도 홍원경찰서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임혁규는 1964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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