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715
한자 崔太煥
영어공식명칭 Choe Taehw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기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연표보기 - 최태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6년 6월 10일 - 최태환 백기 의거 거행
추모 시기/일시 1971년 - 애국지사 최태환 기념비 건립
몰년 시기/일시 1984년연표보기 - 최태환 사망
거주|이주지 시기동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기동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태환(崔太煥)[1897~1984]은 1897년(고종 34)에 태어나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기동에 거주하였다. 서당 훈장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재가하여 열세 살에 고아가 되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동생들을 돌보는 중에도 1916년 이익겸·최중진·이달원·최진환·김인산·마상준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를 만들었다. 최태환 등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동포를 일제의 침탈로부터 구해야 한다고 결의하였고, 일본인의 횡포가 있을 때마다 조선인의 편에서 힘을 모아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1926년 6월 10일 최태환은 앞집 일본인 가옥에 검은 깃봉을 검은 천으로 덮은 일장기[일본에서 깃봉에 검은 천을 덮는 것은 애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하였다. 조선은 상을 당하였을 때 색깔 있는 옷은 입지 않는데, 순종(純宗) 인산일 아침 검은 깃봉에 일장기를 걸은 놓은 것에 울분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태환은 동생에게 사흘 후에 있을 아버지 제사를 잘 모시라고 당부하고는 시장으로 가서 지물포에서 백로지 20장을 구입한 뒤 잘라서 200장을 만들었다. 먼저 정읍청년회관으로 가서 국장일이니 백기를 세우자고 하며 시장에서 사온 옥양목을 달았고, 이후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지국으로 가서 백기 세우기를 권하자 대문 앞에 백기를 내걸었다. 최태환은 “백기를 세우세, 백기를 세우세. 우리 임금 장일에 백기를 세우세!”라고 외치면서 자른 백로지 한 장씩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집집마다 백기가 내걸렸고 상가는 철시하였다. 최태환은 일제 경찰에 연행되어 46일 동안 구금되었으나, 최태환이 유치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매일 경찰서 앞에서 항의하는 바람에 일제 경찰은 기소하지 못하고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광복 후에는 씨앗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고 정읍교육청에 장학금으로 기탁하여서 일명 ‘씨앗장수 독립지사’로도 알려졌다. 최태환은 1984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태환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봉선(張奉善)[1902~1972]이 1939년에 『영산실록(瀛山實錄)』을 간행하였다. 1971년 정읍시 시기동에 ‘애국지사 최태환 기념비’가 건립되었고, 2003년에는 최태환의 후손들이 뜻을 기리기 위하여 청소년 쉼터인 영산의 집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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