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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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允德 |
이칭/별칭 | 녹야(鹿野)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신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주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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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6년 - 김윤덕 입암공립보통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30년 - 김윤덕 정읍농업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31년 - 김윤덕 정읍농업학교 중퇴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김윤덕 대한국악원 국극사 입단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 김윤덕 국립국악원 국악사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968년 - 김윤덕 한국국악협회 이사 재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12월 23일![]() |
몰년 시기/일시 | 1978년![]() |
출생지 | 김윤덕 출생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신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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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경력 |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교사 |
[정의]
전라북도 정읍 출신의 가야금 명인.
[개설]
김윤덕(金允德)[1918~1978]은 호가 녹야(鹿野)이고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흔히 광산 김씨(光山 金氏)로 알려져 있으나, 김윤덕의 묘비에도 ‘김해 김’으로 새겨져 있다. 1918년 전라북도 정읍군 입암면 신면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신면리]에서 태어나서 1978년 사망하였다. 김윤덕은 가야금산조와 거문고산조를 완성하고 줄풍류를 정립하였으며, 가야금과 거문고 이외에도 양금과 설장고 등 여러 악기에 두루 능하였다. 동시대 명인 명창들과 함께 다수의 국내외 공연을 통하여 국악을 알리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국악계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악보화하여 교육과 음악의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김윤덕은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1926년 입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정읍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31년 중퇴하였다. 학교를 중퇴한 이유는 김윤덕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한 것과 연결된다. 호남우도농악의 본고장이자 풍류 문화가 활발한 정읍에서 생활하였던 김윤덕은 1930년 설장고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1931년부터 정자선(鄭慈善)에게 양금 풍류를 배웠고, 1932년에는 오화동에게 가야금병창을 익혔다. 1933년과 1934년에는 김광석(金光錫)에게 가야금을 배우고 김용근(金容根)에게 거문고 풍류를 배웠다. 김윤덕의 스승이었던 김용근은 정읍의 풍류 모임인 초산율계에 속하였기에, 김윤덕도 이 무렵 초산율계의 풍류에 동참하였다. 1940년대 중반 상경하여 1946년 정남희(丁南希)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우고, 1948년에는 한갑득에게 거문고산조를 전수받았다. 대한국악원 국극사 단원으로 5년간[1945년~1950년] 활동하였고, 이후 국립국악원의 국악사(國樂師)로 재직[1950년~1961년]하였다.
1960년대에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교사를 비롯하여 숙명중고등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로 활동하면서 교육자로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김윤덕은 악보 없이 구전되어 온 가야금산조와 병창 등을 악보로 체계화하여 학생들 교재용으로 사용하였다. 김윤덕이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재직할 당시 교내에서 국악관현악단을 시작하였는데, 교내 국악관현악단은 현재의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모태가 되었다.
1968년 한국국악협회 이사로 재임하였고 미국과 일본, 멕시코에서 첫 번째 ‘해외 순회공연’을 하였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이후로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며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1968년 12월 23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에 해당]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는데, 당시 최초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윤덕의 산조는 정남희의 가락을 전수하면서도 오랜 풍류 활동의 영향과 자신이 짜 넣은 더늠으로 말미암아 정남희의 산조와는 다른 느낌이며 풍류의 영향이 짙은 것으로 평가된다.
[저술 및 작품]
김윤덕이 남긴 작품으로는 기악 독주곡인 「김윤덕류 가야금산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