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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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喚喆 |
이칭/별칭 | 송파(松坡)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은주 |
출생 시기/일시 | 19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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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2년 9월 24일 - 김환철 한국국악협회 정주지부 부지부장 선출 |
활동 시기/일시 | 1984년 9월 20일![]() |
몰년 시기/일시 | 1991년![]() |
출생지 | 김환철 출생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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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 |
본관 | 부안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신의 대금 명인.
[개설]
김환철(金喚喆)은 본관이 부안(扶安)이고 호는 송파(松坡)이다. 1910년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만수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에서 태어나 1991년 사망하였다. 정읍의 초산율계(楚山律契) 등 정읍 지역을 중심으로 부안, 전주, 익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대금정악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고 보유자 사망으로 1991년 12월 31일 지정이 해제되었다.
[활동 사항]
김환철은 어렸을 때는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나, 1920년에 한문 수학을 중단하고 1925년에 고부보통학교[현 고부초등학교] 4년을 마친 후 22세부터 광주에서 포목상을 운영하였다. 이 무렵 박동실(朴東實)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1953년 대금 명인 편재준(片在俊)을 만나 영산회상 전부[상령상~굿거리]를 배웠고, 1960년에는 단소 명인 전용선(全用先)에게 영산회상을 다시 익혔으며, 「언락(言樂)」·「편락(編樂)」·「언롱(言弄)」 등 여러 가곡과 시조, 가사의 반주를 배웠다.
1961년 고창군 성내면의 풍류계인 6.2계를 황하영, 황화익 등과 함께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그 외에도 부안의 부풍율계와 전주의 완산풍류계, 익산의 줄풍류계, 정읍의 초산율계에서 활동하였다. 1980년대에는 주로 정읍의 초산율계에서 활약하였고, 초산율계의 제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대 이후 정읍에 거주하면서 시우회에 참여하여 시조 반주를 담당하였고, 1971년 이래 전주정악원의 대금정악 강사를 지냈다. 1982년 9월 24일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정주지부가 창립되면서 김환철이 정진환, 홍판옥과 함께 부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편재준에게서 배운 김환철의 대금은 진철호(陳喆浩), 김영수(金永秀) 등으로 이어졌고, 김환철의 제자 임길동(林吉東)이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이리향제줄풍류의 전수조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