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742
한자 李基烈
이칭/별칭 송포(松圃)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봉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은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9년 12월 19일연표보기 - 이기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69년~1973년 - 이기열 제3대 초산음률회 회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2000년 3월 10일연표보기 - 이기열 사망
출생지 이기열 출생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봉양리 지도보기
성격 국악인
성별
본관 전주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신의 국악인.

[개설]

이기열(李基烈)[1919~2000]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호는 송포(松圃)이다. 1919년 12월 19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봉양리에서 태어났다. 정읍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청에서 근무하였다. 34세 때 신관용에게 가야금을 배우면서 풍류[대풍류, 줄풍류 따위의 관악 합주나 소편성의 관현악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36세부터 정경태에게 가곡·가사시조를 배웠으며, 37세에 김홍진에게 양금을 배웠다. 38세에 김용근에게 거문고 풍류를 배우고, 39세에 나금철과 김홍진에게 양금을 배웠다. 이때의 배움을 바탕으로 1954년 초산음률계(楚山音律契)가 창립될 당시부터 계원으로 참여하며 가야금, 양금,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2000년 3월 10일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이기열은 제3대 초산음률회 회장[1969년~1973년]을 역임하였다. 이기열은 정읍의 초산음률계를 바탕으로 전라남도 구례에서 김무규와 함께 구례향제줄풍류를 일으켜, 1987년 구례향제줄풍류 이수자가 되었고,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구례줄풍류 기능보유자 후보가 되어 구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91년 고향인 정읍으로 돌아와 2000년 사망하기 전까지 초산음률회에 함께하며 후진 교육에 전력하였다. 현재 초산음률회에서 사용하는 가야금과 거문고 악보는 이기열이 만든 구음보를 사용하고 있고, 양금도 이기열의 연주를 받아 정칠환이 받아 적은 악보를 사용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이기열은 1998년 ‘정읍시민의 장’ 문화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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