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11 |
---|---|
한자 | 慕賢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61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811년![]() |
---|---|
현 소재지 | 모현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614-1
![]() |
원소재지 | 우일서당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614-1 |
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3칸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개설]
모현재(慕賢齋)는 1811년(순조 11) 현재의 이문마을 자리에 있었던 우일동(雨日洞)의 동민들이 발의하여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 소은(素隱) 신천익(愼天翊)[1592~1661], 덕원(德源) 배명순(裵命純)[1597~1636], 청호(淸湖) 이안진(李安眞) 등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동계전(洞契錢)를 거두어 세웠다. 원래 우일서당(雨日書堂)이 있었던 곳으로, 건립된 이래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침체되었다. 이후 전라도순찰사를 지낸 이광(李洸)[1541~1607]이 고향에 돌아와 향노(鄕老)들과 함께 남산동(南山洞) 백발회(白髮會)를 조직하여 향약(鄕約)을 실천하였다. 일제 강점기 남산리 지식인들은 구로회(九老會)를 결성하여,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는 지역 인물들의 구심점의 역할을 하였다.
[위치]
모현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614-1에 있다. 이문마을 왼편의 산자락에 있으며 인근에 남산사(南山寺)가 있다.
[형태]
모현재는 콘크리트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의 목조 건물이다. 모현재에는 사우뿐만 아니라 뜰 안에 여러 개의 석비가 세워져 있다. 1802년 건립된 백발회결현유허비(白髮會結賢遺墟碑), 1894년 건립된 구로회결의비(九老會結義碑), 1950년 건립된 양일모현재유계원기사비(兩日慕縣齋儒契員紀事碑), 1968년 건립된 모현재앙지회비(慕賢齋仰止會碑) 등이다.
[현황]
모현재는 사우에 대한 보수는 물론 주변 지역에 대한 정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
모현재가 세워진 것은 우일서당과 백발회의 오랜 향풍(鄕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현재를 통하여 모임을 조직하여 단합하고 일제에 저항한 지역 지식인들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