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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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邑 辰山洞 永慕齋 |
영어공식명칭 | Yeongmojae Ritual House in Jinsan-dong, Jeongeup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진산1길 25[진산동 31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9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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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0년 - 정읍 진산동 영모재 증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정읍 진산동 영모재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11월 11일![]()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12년 - 정읍 진산동 영모재 해체 보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읍 진산동 영모재 국가등록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정읍 진산동 영모재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 |
현 소재지 | 정읍 진산동 영모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진산1길 25[진산동 311-1]![]() |
성격 | 사당 |
양식 | 목조|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김진해 |
관리자 | 김진해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등록문화유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진산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실.
[개설]
정읍 진산동 영모재(井邑 辰山洞 永慕齋)는 1915년 광산 김씨의 재실(齋室)로 건립되었다. 정읍 지방의 대부호 김평창은 당시 재실을 지으면서 근대기의 건축 양식을 도입하였고, 재실 공간을 풍류 공간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다. 정읍의 풍류가객들로부터 예능을 배운 기생들이 재실에서 심사를 받기도 하였고, 정읍 인사들이 풍류 모임을 자주 갖기도 하면서 정읍의 풍류가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2005년 11월 1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위치]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진산1길 25[진산동 311-1]에 있다. 정읍시 진산마을 어귀 산비탈에 있으며 근처에 유애사(遺愛祠)와 진산경로당이 있다.
[변천]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1920년 재실 우측 배면이 증축되었다. 1975년 기단과 계단, 그리고 기와를 보수하였고, 2012년 문간채 도리 상부를 해체하여 보수 작업을 진행하였다.
[형태]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대문간채와 재각(齋閣)이 ‘二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김덕홍의 효행을 기념하는 명정판이 대문간채에 걸려 있다. 재각은 방을 앞뒤 2열로 구성한 겹집형 평면으로 정면 앞줄 오른쪽부터 부엌·온돌방·마루를 두고, 뒷줄에는 온돌방·마루방으로 구성되었다. 대문간채는 관리인이 거주하는 고직사 기능이 통합된 복합 평면으로 근대기 건축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재실의 문은 여닫이와 미닫이로 구성된 삼중의 문으로 되어 있으며, 안쪽에는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미닫이문에는 아(亞)자와 만(卍)자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한편, 당의 문을 모두 걷어 올리면 대청마루와 방의 경계가 사라지고 삼면이 모두 트인 하나의 넓은 공간이 되어, 풍류 공간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전주 한옥마을 학인당과 구조적으로 유사성을 지닌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재실은 돌과 나무로 된 팔각기둥 형태의 활주가 받치고 있는데, 활주의 상단부에 연꽃 문양을 새겨 놓았으며, 돌로 된 기둥 밑에는 팔괘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영모재의 주련마다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과 연잎이 그려져 있다. 재실의 솟을대문 벽에 민화가 그려져 있는 점도 독특하다.
[현황]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김진해가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2012년 서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중심으로 영모재에 대한 기록화 조사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규모와 가구, 그리고 활주와 누마루 등 건축적인 측면과 더불어 구한말의 풍류방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