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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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圓佛敎 花海敎堂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성지길 54-6[화해리 286-1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기 |
설립 시기/일시 | 1938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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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41년 4월 - 원불교 화해출장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 349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 47로 이전 |
개칭 시기/일시 | 1946년 5월![]()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7월 6일![]() |
최초 설립지 | 원불교 화해출장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성지길 54-13[화해리 349]![]() |
주소 변경 이력 | 원불교 화해출장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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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원불교 화해교당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성지길 54-6[화해리 286-13]![]() |
성격 | 교당 |
전화 | 063-535-0447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에 있는 원불교 전북교구 소속 교당.
[개설]
원불교 화해교당은 정읍 지역 원불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원불교 화해교당은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과 제2대 종법사인 정산(鼎山) 송규(宋奎)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이다.
[설립 목적]
원불교 화해교당이 위치한 화해리는 정산 종사가 구도에 대한 일념으로 각 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김해운과의 인연으로 7개월 동안 기도한 곳이다. 화해리에서 운명적으로 대종사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의미를 기리고자 화해교당을 설립하고 정읍 지역 원불교 교화를 주도하였다.
[변천]
원불교 화해교당은 1938년 7월 김해운의 아들 종산 김도일이 자신의 집[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 349]에 ‘원불교 화해출장소’ 간판을 붙이고 법회를 본 것에서 시작한다. 당시 원평교당 조갑종, 오창건 교무가 출장 교화를 진행하였다. 1940년 4월 교도들이 자진 발원하여 정읍시 북면 화해리 47에 238평[약 786.78㎡]을 매입하고 교도들이 직접 공사를 시작하여 1941년 4월 24평[약 79.34㎡]의 목조 건물인 교당을 완공하였다. 1941년 5월 초대 김일현 교무가 부임하였다. 1943년 승부교당에 출장 법회를 나갔다.
1945년 4월 26일 지부로 승격하였으며, 1949년 4월 송자명 부교무가 부임하였다. 창립 유공인은 김해운, 김도일, 송영수, 박원도행, 나성운, 장복현, 정귀환, 김봉업, 김종신, 김원심, 여동진, 김복진, 장법기행, 나종의, 김기전 교도 등이며, 창립 당시의 교도 수는 11명[남자 1명, 여자 10명]이었다.
원불교에서는 2000년 7월 6일 정읍시 북면 화해성지길 54-13[화해리 349-1]에 있는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 종사가 처음 만난 김해운의 집터를 성적 제13호 정읍 화해제우지로 지정하여 화해교당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원불교 화해교당이 위치한 곳은 원불교 성적 제13호로 지정된 정읍 화해제우지[정읍 화해제우터]가 있는 곳이다. 화해교당에서는 성적지를 가꾸고 보호하며 교단사적 법연지로서의 뜻을 살리고 있다. 성적지의 맑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선심(禪心)을 기르는 문화 활동과 농촌의 다문화 가족에게 희망을 주는 교화를 하며, 고령화 시대에 발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지역 사회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
[현황]
원불교 화해교당은 2023년 현재 희타원 이봉원 교무가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