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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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海里 |
영어공식명칭 | Hwaha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준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화해리(花海里)는 풍수지리의 화하농주혈(華蝦弄珠穴), 즉 ‘새우가 구슬을 희롱하는 모양이 꽃 같은 지형’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한 화야, 화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지형이 북서쪽으로 튀어나온 곶의 형태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곶'이 '꽃'으로 경음화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화(花)'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고부군 우일면(雨日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화야리(花野里), 가전리(加田里), 순목리(順木里), 부동(付洞), 마동(馬洞)과 북면 한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우순면 화해리로 개설되었다. 1935년 3월 1일 행정 구역 조정에 따라 화해리는 남산리(南山里), 영파리(暎波里)와 같이 북면에 편입되어 전라북도 정읍군 북면 화해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전국적인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화해리는 전체적으로 구릉과 넓은 평야가 분포하고 있다. 서쪽으로 한교천이 흐른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화해리의 면적은 2.32㎢이며, 인구는 762가구, 1,421명[남자 711명, 여자 710명]이다. 화해리는 북면 북서쪽에 있으며, 동쪽과 남쪽으로 한교리, 서쪽으로 남산리, 북쪽으로 정우면 우산리와 접하고 있다.
화해리는 원화해(元花海)·조동(槽洞)·가전(加田)·외야(外野)·내야(內野)1·내야(內野)2·내야(內野)3 등의 7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원화해마을에는 1903년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화해교회가 있다. 조동마을은 약 300년 전에 말구유처럼 마을 형태가 생겼다고 하여 ‘조동’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집성촌이며,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 간의 당파 싸움에 연루된 한재유가 충청도 청양에서 내려와 광주에서 지내다가, 당쟁이 사라질 무렵에 귀향하던 중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 입구 오른쪽에 한재유를 기리는 비(碑)가 있다. 가전마을은 기름진 밭이 많았기 때문에 ‘가래터’라고도 불리었다. 외야마을은 ‘외야골’이라고도 한다. 내야1마을은 정읍제3일반산업단지의 사원 아파트 마을이며, 1991년 11월 준공되었다. 내야2마을은 1993년 준공된 성원아파트이다. 내야3마을은 성원에서 만든 임대용 아파트이며, 1996년 2월 16일 준공되었다.
화해리 서쪽에는 고속국도 제25호가, 중심부에는 국도 제1호[정읍대로]가 통과하며, 동서로 지방도 제708호가 지나간다. 주요 시설로는 부지 1만 2796㎡에 지상 2층 규모의 정읍시농산물산지유통센터, 정읍시에서 농어촌 정비 사업으로 추진한 행복마루관이 자리하고 있다. 종교 유적지로는 정읍 화해제우터가 있다. 정읍 화해제우터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정산 송규 종사가 처음 만난 김해운의 집터이며, 현재 원불교에서 성적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