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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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普化敎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첨단과학로 269[신정동 87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재영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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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보화교 수련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첨단과학로 269[신정동 878-1]![]() |
성격 | 종교 단체 |
설립자 | 김환옥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 수련원이 있는 김환옥이 창시한 한국의 신종교.
[개설]
보화교(普化敎)는 청강(淸江) 김환옥(金煥玉)이 창시한 증산교 계열의 신종교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를 중심으로 포교 활동을 하였으나 세가 약화되었다. 정읍에는 2023년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에 보화교 수련소가 있다.
[변천]
보화교를 창시한 청강 김환옥은 25세 되던 1921년 보천교에 입교하여 수방(水方) 문정삼(文正三)의 12임(任)으로 있다가 1930년에 탈퇴하고, 서상근(徐相根)을 만나 수운과 증산을 통합하는 교리를 깨달았다 하며 스스로 금강대신(金剛大神)이라 일컬었다. 1933년 겨울 경상남도 하동군 청하면 학동에 교단을 설립하고 포교하다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었다. 1935년에는 독립운동 혐의로 거창경찰서에 체포되었다가 광복 후 출옥하여 자기 집[현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에 돌아와 교당을 짓고 감옥에서 만난 김교헌(金敎憲)과 함께 ‘무극대도보화교(無極大道普化敎)’라는 간판을 내걸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1954년 청강이 사망하자 김재헌이 대표가 되어 1957년에 신태인으로 교단을 옮겼다가 1957년 금산면 쌍용리로 옮기고 교명을 ‘동도교 보화교회’로 바꾸었다. 쌍용리 교회 외에 정읍 신정동의 정해마을과 칠보면 백암리에 교회가 있었다. 보화교의 발전 과정에서 두 분파가 파생되었는데 1959년에 이한우(李澣雨) 등이 진동학제화교(眞東學帝和敎)를 세워 나갔고, 1969년에 권호중(權呼中)이 태종보화교(太宗普化敎)를 만들어 분립하였다.
칠보면 백암리에 있었던 본당에는 중앙에 연화대가 있었고, 동쪽에 옥경대와 일광사, 서쪽에 대현사, 복록궁이 있었다. 연화대 뒤에는 수명궁이 있었고, 주위에는 신자들을 위한 여러 채의 가건물이 있었다. 옥경대에 있었던 3개의 탑 가운데 하나는 본터인 백암리에 남아 있고 하나는 정해마을로 옮겼으며, 하나는 원평 본부로 이전되어 있다. 2023년 현재 보화교 수련소로 이용되고 있는 정해마을 보화교 본당에는 동쪽에 집회 장소인 통정원이 있고, 남쪽에 용천각, 서북쪽에 수일각, 북쪽에 수련장인 대현정이 있다. 대현전 앞뜰에 백암리 본당에서 옮겨 온 탑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