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우정문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308
한자 春雨亭文稿
영어공식명칭 Chunujeong-mung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61년연표보기 - 『춘우정문고』 간행
소장처 전북대학교 도서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금암동 663]
간행처 필양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지도보기
성격 문집
저자 김영상
권책 6권 3책
행자 12행 30자
규격 31.1㎝[세로]|21.3㎝[가로]
어미 상하향흑어미

[정의]

1961년 간행된 정읍 출신의 개항기 유학자 김영상의 문집.

[저자]

춘우정(春雨亭) 김영상(金永相)[1836~1911]은 인산(仁山) 소휘면(蘇煇冕)의 문인으로, 간재 전우, 연재 송병선 등과 교유하였다. 을사조약 후 면암 최익현의 무성창의(武城倡義)에 가담하려 하였으나 노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제가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1911년에 은사금(恩賜金)을 보냈으나 받지 않았다. 1911년 5월에 일본 헌병이 불경죄로 잡아서 동곡헌병대에 가두었다가 김제로 이관되었다. 이후 군산 감옥에 수감하려고 만경강 신창진을 건널 때 강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군산 감옥에 갇혀서 단식 투쟁을 하다가 절명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911년 5월 춘우정이 군산감옥에서 단식하여 5월 9일 순절하였다. 9월에 태인 남촌면 덕가리에 장사하였다. 9월에 일본 헌병 장전(長田)이 와서 문고와 일기, 제문, 만장 등을 빼앗아 갔다. 이후 문인들이 발견되는 유고를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1961년 정읍 필양사에서 『춘우정문고(春雨亭文稿)』를 출간하였다.

[형태/서지]

『춘우정문고』는 6권 3책으로, 문집의 각면은 12행 30자이고, 책 크기는 세로 31.1㎝, 가로 21.3㎝이다. 연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구성/내용]

『춘우정문고』는 6권 3책으로, 권1은 부(賦)와 시(詩)로 구성되어 있다. 권2는 서, 발, 설, 논, 전 등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3은 상량문, 묘갈명, 행장 등 주요 행사와 관련된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권4, 권고, 권6은 부록으로, 춘우정의 유묵, 어록, 세계(世系), 연보, 일기, 가장 등 춘우정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구성되었다. 특히 권5에 실린 「각금일기(卻金日記)」는 일본 천황의 은사금을 거절하던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권6은 정읍 필양사김영상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올린 고유문, 축문 등으로 구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영상은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근대 유학자로서 나라를 근심하고, 일제에 항거하였던 인물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정읍 지역에서 지역 유지를 회유하기 위하여 벌인 내용들이 「각금일기」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김영상은 평범한 일반 백성으로서 나라를 걱정하여 70세의 나이로 면암 최익현과 함께 무장 봉기를 하려 하였으며, 일제 은사금을 거절하였다고 감옥에 갇혀 끝내 죽임을 당한 굳센 의지를 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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