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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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科橋洞 陶窯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곽장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 과교동 도요지 지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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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과교동 도요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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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가마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 가마터.
[개설]
과교동 도요지(科橋洞 陶窯址)는 1997년 지표 조사를 통하여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지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도요지가 유실 내지 훼손되었다. 지표 조사 때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까지의 분청사기편과 요도구(窯道具), 불 먹은 흙 등이 수습되었다. 분청사기는 구연부가 외반된 대접과 접시, 완 등이 있으며, 문양은 대부분 귀얄문이다. 요도구는 높이 7~8㎝ 원통형 도짐이[도지미]이며, 불 먹은 흙이 확인되었다. 조선 전기 분청사기 쇠퇴기에 등장하는 귀얄문이 일부 확인되어 유적의 상한이 더 올라갈 개연성이 높다.
[위치]
과교동 도요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에 있다. 용산저수지 남쪽 골짜기에 해당하며 현재는 한옥 스테이가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과교동 도요지는 1997년 국립전주박물관 주관으로 시행된 전북특별자치도의 조선 시대 도요지 지표 조사 때 신정동 심태식의 제보로 존재가 알려졌다. 지표 조사를 통하여 과교동 도요지가 학계에 보고되었지만 한옥 스테이 조성 공사로 대부분 훼손 내지 유실되었다.
[현황]
1997년 발간된 지표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과교동 도요지는 당시 농경지로 개간된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임야 지대를 이룰 정도로 도요지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였으나 현재는 도요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도요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행정 당국의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지표 조사 때 수습된 분청사기는 대부분 작은 다리굽으로 제작 수법이 정교하지 않다. 굽 주위까지만 시유된 유약은 갈색, 녹갈색을 띠고 있으며, 빙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소성 방법은 포개어 쌓기 방식으로 굽다리 바닥에는 6~7군데의 비짐눈이 있다.
[의의와 평가]
과교동 도요지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가 쇠퇴하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전반까지 정읍 일원에 분청사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운영된 생산 유적으로 판단된다. 고려 말 왜구의 출몰과 약탈로 줄포만을 떠나 정읍 동부로 이동한 도공 중 일부가 운영한 가마터로 운영 기간이 길지 않았다. 조선 시대 정읍 지역 분청사기 역사성을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