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명주라 불리던 전라도의 전통주, 죽력고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022
영어공식명칭 Jukryeokgo, a Traditional Liquor from Jeolla-do, Called One of the Three Great Liquors of the Joseon Dynasty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조성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에서 전승되는 전통 증류주.

[개설]

죽력고는 조선 3대 명주(名酒)로 꼽히던 술로, 대나무를 불에 지펴 흘러내리는 대나무즙에 대잎이나 석창포, 계심 등을 넣고 소주를 내려 만든 증류주이다. 죽력고를 한자로 풀이하면 대기름이 스며 있는 술을 뜻한다. 술임에도 ‘주(酒)’가 아닌, 최고급 약소주에만 붙일 수 있는 ‘고(膏)’ 자가 붙는다. 죽력고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향토술담그기’ 기능보유자 송명섭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죽력고의 역사와 유래]

죽력고는 조선 시대부터 제조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청죽을 잘게 쪼갠 뒤 불에 넣어 구울 때 스며 나오는 진액을 소주에 넣어 만들어 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로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역에서 빚어 온 약용주이다. 1766년 무렵 유중림(柳重臨)이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증보하여 간행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죽력과 좋은 꿀, 중품의 노주[소주] 적당량을 섞어 병에 넣은 후 솥에 중탕하여 쓴다. 생강즙을 약간 첨가하여도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죽력고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1787년 간행한 시문집 『송자대전(宋子大全)』에서 ‘진시절미(眞是絶味)’, 즉 ‘이 시대의 진실되고 절대적인 맛’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전소설인 『춘향전(春香傳)』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춘향이 이몽룡에게 주안상을 올릴 때 등장하는 술이 바로 죽력고이다. 또한, 영조·정조 시기에 쓰인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여러 가지 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지역별로는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황해도의 이강고(梨薑膏), 호남의 죽력고(竹瀝膏) 등이 권할 만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1946년 조선에 관한 상식을 널리 알리고자 저술한 문답서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죽력고가 배즙과 생강즙을 섞어 빚은 소주인 ‘이강고(梨薑膏)’, 소주에 홍곡(紅穀)으로 발그레한 빛을 낸 ‘감홍로(甘紅露)’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라고 소개된다.

한편, 개항기 황현(黃玹)이 지은 야사(野史)인 『오하기문(梧下奇聞)』에도 죽력고가 등장하는데, “전라북도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고문을 당한 전봉준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지역 주민이 가져다준 죽력고 석 잔을 마시고 기력을 찾았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이 일로 인하여 죽력고는 몸을 보하는 명약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고도 전한다. 실제로 술 이름에 최고급 약소주에 붙이는 ‘고’ 자가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예부터 죽력고는 한방에서도 쓰였는데, 이를테면 어린아이가 갑자기 풍으로 말을 못할 경우 구급약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이럴 때는 생지황과 계심, 석장포를 함께 넣어 제조하였다.

이처럼 죽력고가 지닌 약효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기록이 남아 있다. 1610년에 완성된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갑작스러운 중풍, 가슴의 대열(大熱)[고열]을 다스리고 번민을 그치게 한다. 중풍으로 인한 실음불어(失音不語)[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말을 못하는 것], 담열(痰熱)로 인한 혼미 등을 치료한다. 소갈(消渴)을 그치게 하고 파상풍, 산후 발열, 소아 경간[놀랐을 때 발작하는 간질] 등 위급한 질환을 치료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6세기 중국 명나라 본초학 연구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과 1872년 무렵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농업 백과전서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등에서도 혈압과 천식, 중풍, 뇌졸중, 발열 등 증상을 완화하는 데에 효능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죽력고와 송명섭]

·죽력고는 본래는 전라도 지역에서 비교적 흔히 만들어지던 지역의 술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전후로 명맥이 끊겼다가 정읍 지역의 송명섭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날 전승되고 있다. 1957년생인 송명섭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대한민국 식품명인 48호이자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향토술담그기’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송명섭이 무형유산 기능보유자로 지정되는 데에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였으니, 처음 신청을 하였을 때 “죽력은 음식이 아니라 약이다”라는 평을 받고 심사에서 탈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송명섭은 죽력고가 음식임을 증명하고자 문헌을 열심히 조사하기 시작하였고, 오랜 노력 끝에 조선 후기의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죽력고에 대한 기록을 찾아 죽력고가 음식임을 증명함으로써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송명섭은 현재 태인합동주조장 대표를 맡고 있으며, 30여 년 이상 전통적인 방법에 의하여 술 담그는 법을 고수하면서 죽력고를 복원하여 상품화하고 있다. 원래 죽력고는 다른 우리 전통술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밀주 단속과 6·25전쟁으로 인하여 단절의 위기를 겪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식민 통치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1916년 주세령을 제정하였고, 술 만드는 일에 대하여 면허제를 실시하여 신고하지 않은 술은 밀주로 간주하고 단속하였다. 가정에서 술을 빚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단속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 많은 전통주가 소멸의 위기에 처하였다. 그나마도 죽력고는 죽력이 한약방에서 치료제로 쓰였기 때문에 술이 아닌 약으로서 제조법이 어렵사리 전승될 수 있었다.

송명섭이 죽력고 제법을 전승·복원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러한 상황와 무관하지 않다. 송명섭의 집안은 양조장을 운영하였는데, 정작 송명섭이 죽력고의 제조법을 배운 것은 집안 양조장이 아니라 정읍 고부면 출신인 어머니에게서였다. 송명섭의 어머니는 고부면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친정아버지, 곧 송명섭의 외할아버지에게서 죽력고 제조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송명섭의 외할아버지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비방을 모아 치료 보조제로 사용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대나무 액인 죽력을 이용하여 만든 죽력고였다. 그런 죽력고 제조법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송명섭의 어머니가 양조장을 운영하는 송씨 집안으로 시집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송명섭에게 전승되었다. 이러한 송명섭의 집안 내력을 통하여서도 죽력이 술의 재료이자 약으로 이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송명섭은 죽력고 제조 방법을 일부러 배웠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전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뒷산의 솔잎을 따 오고 대나무 잎을 뜯어 오는 등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죽력고에 들어가는 재료 선별 기술을 익힌 것이다. 송명섭은 어려서부터 해 왔던 대로 죽력고의 주재료인 쌀, 댓잎, 솔잎, 죽력, 생강, 석창포 등을 정읍 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고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쌀은 매년 30t가량 쓰이는데, 송명섭이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댓잎 역시 송명섭이 기르는 대나무에서 채취하며, 솔잎도 주변 산에서 가져온다. 생강은 인근 농가에서 직접 구매한다. 가까이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력고의 생산과 특징]

죽력고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죽력, 멥쌀, 누룩, 댓잎, 솔잎, 생강, 석창포, 계심 등이다. 죽력고에서 가장 중요한 원료는 무엇보다 대나무이다. 죽력고 제조에 사용되는 대나무는 3년 이상 된 것이 좋다. 3년 정도 된 대나무는 속이 잘 차 있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아서 재료로서 가장 적합하다. 대나무의 굵기는 중요하지 않다. 대나무는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나무 산지로 잘 알려진 곳은 전라남도 담양군, 경상남도 진주시 등인데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나무는 13종이나 된다. 대나무의 죽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죽력 외에도 사상의학(四象醫學)에서는 대나무의 잎, 뿌리, 죽실 등 대나무의 여러 부위를 치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대나무를 30㎝ 정도 자른 후 양끝을 고정시켜 한가운데를 숯불에 구우면 양끝으로 흘러나오는 진액이 바로 죽력이다. 죽력은 대나무를 고아서 뽑아냈기 때문에 ‘대기름’이라고도 불리며, 일부 지역에서는 죽즙(竹汁)으로 부르기도 한다. 죽력을 소주에 넣고 꿀, 생강즙을 함께 첨가하여 끓는 물에 중탕하는 방식으로 제조한 것이 죽력고이다. 증류를 통하여 빚은 죽력고는 알코올 도수가 30~35% 정도에 이르며 대나무의 상쾌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나는 특징을 지닌다.

정읍 지역에서 죽력고를 제조할 때 죽력을 내리는 과정은 몹시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송명섭 기능보유자의 제조 방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장 중요한 재료인 청죽(靑竹)을 잘 손질하여 대나무 마디와 마디 사이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여러 조각으로 쪼갠다. (2) 자른 대나무 토막을 큰 항아리에 가득 채운다. (3) 땅에 구덩이를 파서 죽력이 담길 작은 항아리를 살짝 묻는다. (4) 자른 대나무가 담긴 항아리를 작은 항아리 위에 뒤집어 놓은 다음 한지로 봉한다. (5) 황토로 항아리를 두껍게 덮는다. (6) 항아리 주변에 말린 콩대를 둘러 놓고 불을 지핀다. (7) 콩대가 거의 다 타면 약간의 불씨만 남은 상태에서 쌀겨를 부어 다 탈 때까지 기다린다. 콩대의 불씨로 은은하게 왕겨를 태우는 것이다. (8) 약 1주일 뒤 쌀겨가 다 타고 나면 죽력을 확인한다.

송명섭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은 날씨의 영향도 상당히 중요하다. 계속 불을 지펴야 하기 때문에 습하거나 비가 오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날씨가 좋다고 하여도 제대로 추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서 죽력을 얻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만큼 죽력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진귀한 재료이다. 실제로 송명섭은 죽력고의 제법을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 하다가도 결국 실패하거나 중도에 너무 힘들어 포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무튼 잘 내린 죽력에 꿀, 생강, 솔잎, 대나무 잎, 석창포, 계피, 대나무 숯 등 각종 약재와 섞고 나서 이를 소줏고리에 넣어 증류하면 죽력고가 탄생한다. 증류의 과정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데, 소줏고리 안을 채운 뒤 그 위에 대나무의 잔가지를 촘촘히 가로로 넣어 뒤집어도 쏟아지지 않게 한다. 그러고 나서 전통 방식으로 빚어내 30일 동안 숙성한 청주를 끓는 솥에 얹는다. 불은 약하게 때야 하는데 이 과정은 6시간 이상 걸린다. 끓어오르는 술이 이를 통과하면 드디어 죽력고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밑술 한 말[약 18ℓ]을 넣어 만들지만 나중에 얻는 죽력고는 5리터 정도뿐이다. 죽력고는 어느 계절이나 담글 수 있는 술이지만 배꽃 필 무렵인 음력 3월이 가장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는 적기라고 한다.

[현황]

송명섭은 죽력고를 비롯한 전통주의 맥을 잇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2002년 국순당이 주관한 ‘아름다운 우리술을 찾습니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래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죽력고는 현재 “4대에 걸쳐 130여 년 동안 전승된 문화재급 전통주”라는 타이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판매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지는 못하고 있다. 송명섭이 죽력고를 계량화하여 대량 생산으로 제조하자는 주변의 수많은 제의를 거절하고, 상업화 및 자본의 논리로 전통주의 원형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장인 정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직접 농사지은 쌀로 전통적인 수공업의 방식에 따라 소량만 생산하고 있다.

한편, 죽력고 제조사인 태인합동주조장은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원·육성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바 있는데, 찾아가는 양조장은 소비자가 직접 양조장에 찾아가 전통주와 관련한 다양한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전통주 원료에 대한 교육, 죽력고 만들기 등 태인합동주조만의 특화된 전통주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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