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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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文里 |
영어공식명칭 | Jangmun-ri |
이칭/별칭 | 장문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진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정읍군 영원면 장문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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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8년 4월 18일 - 전라북도 정읍군 영원면 장문리에서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 장문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 장문리에서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로 개편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26㎢ |
가구수 | 141가구 |
인구[남/여] | 210명[남 101명|여 109명]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789년(정조 13)에 펴낸 조선 시대 최초의 마을 기록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장문리(場門里)’라고 하였으나 이후 ‘장문리(長文里)’로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장문리는 조선 시대에 고부읍의 관문이 있었던 지역이며 관문 밖에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장문리를 다른 이름으로는 장문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고부군 동부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청룡리(靑龍里), 음지리(陰地里), 등전리(嶝田里), 양지리(陽地里), 월천리(月川里), 장문리, 허문리(許門里)와 남부면(南部面) 남복리(南輻里)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영원면 장문리로 개설되었다. 1918년 4월 18일 장문리가 영원면에서 고부면으로 편입되어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 장문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전국적인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장문리 장문마을 뒤에는 성황산(城隍山)[영원면]이 있고 양지마을 뒤에는 응봉산(鷹峯山)이 있으며 음지마을 뒤에는 두승산(斗升山)이 있다. 장문리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천치재와 돌짐재라는 고개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수리 시설로 성황산과 응봉산 사이에는 석우제라 불리는 큰 저수지가 있고 소류지로 양지제와 음지제, 청룡제가 있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장문리의 면적은 4.26㎢이며, 인구는 141가구, 210명[남자 101명, 여자 109명]이다. 장문리는 고부면의 동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덕천면 하학리, 서쪽으로 고부리, 남쪽으로 남복리, 북쪽으로 영원면 후지리와 접하고 있다.
장문리에는 장문마을, 양지마을, 음지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다. 장문마을은 고부관아의 동쪽 관문 밖에 있던 마을로 허문골, 거모리, 대정리, 골말 등이 합쳐진 마을이며 장문리의 중심 마을이다. 양지마을은 양지동과 천치리, 월천동이 합쳐진 마을이고 음지마을은 윗쪽의 등전리와 아랫쪽의 청룡리가 합쳐진 마을이다.
장문리는 교통의 요지로서 조선 시대에는 고부읍과 태인읍을 연결하는 태고선이 있었다. 광복 후에는 국도 제29호가 장문마을 안길로 지나갔으나 1960년대에 우회 도로가 장문마을 동쪽인 남복리 쪽으로 개설되고, 2000년대에 입석리 방향으로 연결되는 직선 도로가 개설된 데 이어 현재는 국도 제29호가 영원면 성황산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돌아가는 코스로 변경되었다. 인구 감소와 교통로의 변화로 장문리가 지니고 있던 상권은 급격히 소멸되어 갔다. 장문리에는 1928년 설립된 고부교회가 있고, 태고종 사찰인 영주사가 있다. 장문리의 양지마을과 음지마을 주변 골짜기에는 벼농사와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축산 농가도 분포되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인 장문리오층석탑이 있다. 장문리 산19의 부처댕이 암굴에는 머리가 결실된 불상이 넘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