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14
한자 賓城
이칭/별칭 부성(賦城),빈성(斌城),무성(武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빈성현 제정
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빈성현에서 인의현으로 개편
관할 지역 빈성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지도보기

[정의]

757년부터 940년까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 신라에서 행정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 운영하였다. 경덕왕의 한화 정책으로 전통 지명을 중국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 36, 잡지 제5, 지리 3 신라 조에 “빈성현은 본래 백제 빈굴현인데, 경덕왕이[빈성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고려]은 인의현이다[斌城縣, 本百濟賔屈縣, 景徳王改名. 今仁義縣]”라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8년 조에 “여름 4월 19일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왔는데, 대당(大幢)과 서당(誓幢)이 먼저 가고 하주(下州)의 군사는 뒤에 가게 하였다. 빈골양(賓骨壤)에 이르러 백제의 군사를 만나 서로 싸웠지만 패하여 물러났다[夏四月十九日, 班師, 大幢·誓幢先行, 下州軍殿後. 至賓骨壤遇百濟軍, 相鬪敗退]”라고 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57, 지 권 제11 지리 2에 “인의현은 본래 백제의 빈굴현[또는 부성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무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다시 지금의 이름[인의]으로 바꾸고 고부군에 속하게 하고 대산감무가 와서 겸직하였다[仁義縣本百濟賓屈縣[一云賦城縣], 新羅景德王, 改名武城, 爲大山郡領縣. 高麗, 更今名, 來屬, 以大山監務, 來兼]”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51권,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태인현 조에 “인의현은 본래 백제 빈굴현[혹은 부성현]인데 신라에서 무성으로 바꾸고 태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인의현으로 바꾸고 모두 고부군의 임내로 삼았으며, 태산군에서 감무를 겸하였다. 현종 10년(1019) 기미년에 두현으로 나누었다. 본조[조선] 태종 9년(1409) 기축년에 양현을 합하여 태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종] 16년 병신에 속역인 거산으로 읍의 [치소를] 옮겼다[仁義縣, 本百濟 賓屈縣, [一云賦城縣] 新羅改武城, 爲太山郡領縣, 高麗改仁義縣, 皆爲古阜郡任內, 以泰山郡兼監務. 顯宗十年己未, 分爲二縣, 本朝太宗九年己丑, 合兩縣, 改泰仁, 十六年丙申, 徙邑于屬驛居山]”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4 전라도 태인현 조에 “인의현은 본래 백제 빈굴현으로 또는 부성이라고도 한다. 신라에서 무성으로 바꾸고 태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인의로 바꾸고 고부군에 속하게 하고, 태산감무가 와서 겸직하였다. 현종 10년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본조[조선] 태종 9년에 다시 합하여 하나의 현으로 하고 지금의 이름[태인]으로 바꾸고 거산역으로 치소를 옮겼다[仁義縣本百濟賓屈縣. 一云賦城. 新羅改武城, 爲太山郡領縣. 高麗改仁義, 屬古阜郡, 以太山監務來兼. 顯宗十年, 各置監務. 本朝太宗九年, 又合爲一縣, 改今名, 移治于居山驛]”라고 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권11 전라도 태인 고읍 조에 “인의는 [태인현 치소에서] 서쪽으로 10리 떨어져 있다. 본래 백제 빈굴인데 신라 경덕왕 16년에 빈성으로 바꾸고 태산군의 연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인의로 바꾸고, 현종 9년(1018)에 고부군에 속하게 하였다. 후에 태산감무가 와서 겸직하였다가 후에 나누고 현감을 두었다. 본조[조선] 태종 9년에 병합하였다[仁義. 西十里. 本百濟賓屈. 新羅景德王十六年改斌城, 爲太山郡領縣. 高麗太祖二十三年改仁義. 顯宗九年屬古阜郡, 後以太山監務來兼. 後析置縣監. 本朝太宗九年來倂]”라고 되어 있다.

[내용]

빈성현은 백제 시대에는 빈굴현(賓屈縣)이었다. 빈굴현은 빈굴현(賔屈縣)이라고도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부성(賦城)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757년(경덕왕 16)에 빈성현(斌城縣)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대동지지』에는 빈성현으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으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무성(武城)으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부성(賦城)’, ‘빈성(斌城)’, ‘무성(武城)’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변천]

백제 시대 빈굴현 또는 부성이었으며, 백제 멸망 이후 757년 빈성(斌城) 또는 무성(武城)이라고 하였다. 고려 시대인 940년(태조 23) 인의현이 되었다. 조선 건국 후 1409년(태종 9)에 태산군인의현(仁義縣)을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 되었다. 빈굴현의 치소에 대하여서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정우면 등지로 보고 있으나, 신태인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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