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20
한자 川原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천원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462년연표보기 - 천원역 앵곡도 소속에서 삼례도 소속으로 편제
폐지 시기/일시 1896년 1월연표보기 - 천원역 폐지
관할 지역 천원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천원리 지도보기

[정의]

조선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천원리에 있던 역.

[개설]

역(驛)은 신라 때부터 이미 존재하였고 고려에서 더욱 발전하여 개경을 중심으로 전국을 22역도(驛道) 525역으로 편성하고 또 대·중·소 3로(三路)로 구분하여 위치와 역로(驛路)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 시대 22개 역로 중 하나인 전공주도(全公州道)에는 삼례역(參禮驛)을 비롯하여 21개의 역이 있었는데, 현재의 정읍 지역에는 천원역(川原驛)영원역(瀛原譯) 등 두 개의 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 시대 정읍 지역에는 영원역, 천원역, 거산역(巨山譯) 등 3개의 역이 설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전통 시대 도성과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육로에 설치한 대표적인 교통·통신 제도로는 역과 원(院)을 들 수 있다. 역은 관리나 외국 사신의 왕래 때 필요한 물품과 마필(馬匹) 공급, 공문 전달, 관물(官物)의 수송이 목적인 반면 원은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숙박 시설로서 기능을 한 기관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역은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약 11.78㎞]마다 두었다

[관련 기록]

1530년(중종 25) 편찬된 조선 전기 대표적인 관찬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역원」 항목에는 정읍현의 남쪽 25리[약 9.82㎞]에 천원역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조 연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천원역이 관아의 서쪽 20리[7.85㎞]에 있으며, 원(院)은 “관아의 서쪽 천원역에 있으며, 20리 거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및 변천]

『고려사』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천원역은 고려 시대부터 정읍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설치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 성종 대에 전국의 525개 역을 22개 역도(驛道)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전공주도 소속 21개 속역 중 하나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처음에는 전라도 전주(全州)에 위치하였던 앵곡도(鶯谷道) 소속이 되었다가,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 조선 시대 41개 역도 중 하나였던 삼례도(參禮道) 소속의 역으로 편제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천원역이 앵곡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성종 대에 편찬 완료된 『경국대전(經國大典)』과 1865년(고종 2) 왕명에 따라 영의정 조두순, 좌의정 김병학 등이 편찬한 조선 시대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삼례도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서도 천원역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천원역에서 장시(場市)인 천원시(川原市)가 열린 사실에서도 짐작되듯이 천원역은 북쪽의 정읍·태인 방면, 남쪽의 장성 방면, 서남쪽의 고창 방면 등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자리하였으며, 천원역에서 북쪽으로는 태인 거산역, 남쪽으로는 장성 단엄역 등과도 연결되어 있어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천원역은 1896년(고종 33) 1월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폐지되었는데 명칭만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538-3에 있는 천원역이다. 전근대 교통 통신 시설로서 천원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호남선 철도의 역 명칭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천원역은 2024년 1월 현재 정읍역에서 관리하는 무배차 간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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