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21
한자 居山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거산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462년연표보기 - 거산역 앵곡도 소속에서 삼례도 소속으로 편제
폐지 시기/일시 1896년 1월연표보기 - 거산역 폐지
관할 지역 거산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거산리 지도보기

[정의]

조선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거산리에 있던 역.

[개설]

역(驛)은 전통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통·통신 제도의 일종이다. 신라 때부터 존재하였던 역은 고려에서 더욱 발전하여 개경을 중심으로 전국을 22역도(驛道) 525역으로 편성하고, 또 대·중·소 3로(三路)로 구분하여 위치와 역로(驛路)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 시대에 전공주도(全公州道)에는 삼례역(參禮驛) 등 21개의 역이 있었는데 현재의 정읍 지역에는 영원역(瀛原譯)천원역(川原驛) 등 두 개의 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조선 시대에는 거산역(巨山譯), 영원역, 천원역 등 3개의 역이 설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전통 시대 대표적인 교통·통신 제도로는 역과 원(院)을 들 수 있다. 역은 관리나 외국 사신의 왕래 때 필요한 물품과 마필(馬匹) 공급, 관물(官物)의 수송 등이 목적인 반면 원은 공무를 수행하는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로서 기능을 한 기관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역과 원을 합하여 역원(驛院)으로 통칭하였는데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라고도 하였다.

[내용 및 변천]

『고려사』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거산역은 고려 시대부터 전라도 태인[현 정읍시 태인면 일대]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설치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 성종 대에 전국의 525개 역을 22개 역도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전공주도에 소속된 21개 속역 중 하나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처음에는 앵곡도(鶯谷道) 소속이 되었다가 1462년(세조 8) 전국적으로 역도제(驛道制)가 개편되었을 때 조선 시대 41개 역도 중 하나였던 삼례도(參禮道) 소속의 역으로 편제되었다.

조선 중종 때인 1539년(중종 25) 편찬된 조선 전기 대표적인 관찬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역원」 항목에는 태인현의 남쪽 25리[약 9.82㎞]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1년(고종 8) 전라도 감영에서 편찬한 『호남읍지(湖南邑誌)』와 1895년 전라도 감영에서 작성된 전라도 56개 읍지를 합편한 전라도 도지(道誌)인 『호남읍지(湖南邑誌)』에는 거산역에는 역리(驛吏) 15명, 역노(驛奴) 15명, 말[馬] 15필이 배속되어 있으며 삼례도에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6년(고종 33) 1월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될 때 거산역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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