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호리 농민동맹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49
한자 禾湖里 農民同盟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5년 - 화호농민동맹 창립 추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6년 9월 23일 - 화호리 농민동맹회 제2회 정기총회 개최
최초 설립지 화호리 농민동맹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지도보기
성격 농민조합

[정의]

일제 강점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에서 일제에 항거한 합법적 농민조합.

[개설]

1920년대 후반 전라북도의 합법 농민조합은 고창의 고창농조, 옥구의 옥구농조와 임피농민연합회, 익산의 이리농조, 임실의 임실농조, 전주의 구와리농조, 전주농조가 있었다. 정읍에는 화호리 농민동맹회와 신태인농조, 이평농조, 산외농조 등이 있었다. 이러한 합법 농민조합은 고율의 소작료 인하, 불납 동맹, 습격 테러 투쟁, 소작 관계 개선 투쟁 등 여러 형태의 소작쟁의를 벌였으나, 1931년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합법 농민조합은 경찰의 탄압과 내부 역량 부족으로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었다. 합법 농민조합이 비밀 결사가 아닌 표면에 드러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탄압받은 사례가 종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일제는 1932년 11월 김제·정읍·화호·이평·하리 등 5개 농민조합원 8명에게 많게는 3년, 적게는 1년 6개월을 구형하였다.

[변천]

사료의 제한으로 화호리 농민동맹회의 활동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다만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일부 실려 있어 몇 가지 참고가 된다. 화호리 농민동맹회에서는 1926년 9월 23일 제2회 정기총회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제2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적색 회원증을 왼쪽 가슴에 차고, 회원석은 물론이고 내빈석과 방청석에도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각지로부터 온 축전 20여 통을 낭독한 후 내빈의 의미심장한 축사가 있은 후 만세를 삼창하였다. 오후 4시에 기념식을 마치고 장소를 공립보통학교로 옮겨 해당 21개 지역으로부터 온 무장대와 농악대가 연합하여 여흥을 즐겼다. 『동아일보』 기사로 보아 화호리 농민동맹회는 1925년 창립된 것으로 보이며, 합법 농민조합이라 하지만 적색 회원증을 패용한 것으로 보아 이미 좌경화된 농민 단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화호리 농민동맹회와 관련된 사건은 구마모토[熊本] 농장의 관리 구역에서 있었다. 1926년 10월 10일 구마모토 농장의 사무원이 화호리 농민동맹회 제13구역인 하청리에 나가 소작료를 검견할 때 해당 구역 경수철(景洙哲) 외 회원 네 명이 재관평(再觀評)을 요구하자 다툼이 일었다. 다툼의 당사자 다섯 명은 줄포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은 후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청 검사국으로 넘겨졌으나 이후 결과를 알려 주는 후속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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