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103
한자 禾湖里
영어공식명칭 Hwah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정읍군 용북면 화호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3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용북면 화호리에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면 화호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0년 11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면 화호리에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읍 화호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읍 화호리에서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74㎢
가구수 238가구
인구[남/여] 381명[남 171명|여 210명]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벼가 호수같이 펼쳐져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화호리(禾湖里)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태인군 용산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화호리, 정자리(亭子里)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용북면 화호리로 개설되었다. 1935년 3월 1일 용북면이 신태인면으로 개칭되면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면 화호리로 개편되었다. 1940년 11월 1일 신태인면이 신태인읍으로 승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읍 화호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전국적인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읍군정주시가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화호리동진강 하류 지역으로 해발 10m 정도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남쪽에는 동진강이 흐르고 있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화호리의 면적은 2.74㎢이며, 인구는 238가구, 381명[남자 171명, 여자 210명]이다. 화호리신태인읍의 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신덕리, 서쪽으로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 남쪽으로 부안군 백산면 대수리, 북쪽으로 김제시 부량면 대평리와 접하고 있다.

화호리는 포룡(抱龍)·용교(龍橋)·용서(龍瑞)·정자(亭子) 등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포룡마을에는 포룡동경로당, 화호청년회 사무실이 있다. 용교마을에는 일본식 가옥이 다수 남아 있다.

화호리 일대는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먹을 것이 풍부하고, 정읍, 김제, 부안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여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육로뿐만 아니라 동진강 나루터가 있어서 수상로를 이용하여 물산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다. 용북면 시기에 면사무소가 있었으나 철도가 개설되면서 신태인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화호치안센터, 인상고등학교, 화호보건진료소 등이 있다.

화호리는 일제 강점기에 인근 쌀 침탈 지역의 중요한 물류 센터로서 역할을 하였다. 당시 35호 정도의 일본인 집이 있었다고 하며, 일본인 농장주와 일본인 이주자, 조선인 마름 등도 거주하였다. 현재에도 일본식 가옥 등 건물이 상당수 남아 있는데,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국가등록문화유산],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직원가옥[전북특별자치도 등록문화유산], 경리과장 사택, 일본인 직원 사택, 직원 합숙소, 화호자혜진료소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정읍시는 신태인 화호리 일원의 근대 문화 역사 공간을 관리하고 보존하여 근대 역사 교육의 장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일제 강점기 구마모토 농장 쌀 창고 건물을 2021년 리모델링하여 정읍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특히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정읍과 김제 일대에 대규모 토지를 차지한 일본인 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가 소유하였던 주택이며, 일제 강점기 일본인 농장주의 생활 양식과 농촌 수탈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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