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사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09
한자 龍藏寺址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후백제
집필자 허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4년 - 용장사 폐사
소재지 용장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지도보기
성격 사찰 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절터.

[개설]

용장사(龍藏寺)는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 견훤과 관련을 맺는 운주 조통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운주사(雲住寺), 운산사(雲山寺) 등으로도 불렸다. 용장사가 있는 남쪽 봉우리 정상에 수도승의 선방인 암굴이 하나 있으며, ‘도통암(道通庵)’이나 ‘도통굴(道通窟)’ 또는 ‘조통암(照通庵)’이라고 부른다. 현재도 운주산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굴이 있는데, 지역에서는 ‘도통바위’ 또는 ‘조통바위’라 불러 도통암이나 조통암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경 자수의 「운주산용장사사적기」를 통하여 조선 후기에는 용장암(龍藏庵)·왕박암(王朴庵)·백운암(白雲庵)·송고암(宋高庵)·장경암(長慶庵)·묘덕암(妙德庵)·향일암(向日庵)·은신암(隱身庵)·석탄암(石灘庵) 등의 암자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송고암은 절안마을과 진산골로 들어가는 중간 지점의 여산 송씨 지신공파의 재각 영운재(永雲齋)가 있는 송감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석탄암은 『무경집』에 실린 「석탄암」이라는 시에 절벽 누대 가에 옛 탑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칠보면 반곡리에 있는 석탄사(石灘寺)로 여겨진다.

용장사에서는 1635년(인조 13) 4월부터 9월까지 짧은 시간 안에 11종의 불서를 간행하는 대규모 불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불사는 계학(戒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용장사에서 간행된 불서는 1432년 1종, 1635년 11종, 1670년 1종 등 총 13종의 불서가 전하고 있다. 1635년경 불서 간행은 임진왜란정묘호란 이후 태능 소요와 같은 서산계와 벽암 각성과 같은 부휴계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당대 이름 있는 대선사들의 불사 참여는 용장사의 사격(寺格) 및 역사적 가치가 당시 승려들에게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 밖에도 유학자들의 강학 공간으로도 이용되었으며, 유학서인 『주자전서(朱子全書)』나 『논어언해(論語諺解)』 등의 ‘사서 언해(四書 諺解)’도 용장사에서 간행되었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라도 태인현조에 운주산(雲住山)에 용장사가 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절이 있던 자리에는 마을이 들어선 지 오래되어 현재는 절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절터가 있던 곳 안에 마을이 들어섰다고 하여 붙은 ‘절안마을’의 이름 유래를 통하여서만 전할 뿐이다. 용장사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 간행된 『동국여지지』와 『무경집』의 「운주산용장사사적기」에서 용장사의 유래와 변천 과정 등을 살필 수 있다. 용장사는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 견훤과 관련을 맺은 운주 조통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운주 조통은 신라 후기에 중국 남부 지역으로 건너가 운거 도응에게 불법을 수학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후백제의 견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이때 선종 사찰인 용장사를 창건하였는데, 창건은 900년부터 927년 11월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견훤이 용장사를 후원한 것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 때문이었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운주 조통은 후백제를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그로 인하여 고려에서는 크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용장사는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후기까지 기록에서 존재가 확인된다. 고려 명종 대를 전후하여 활동하였던 고돈겸(高惇謙)의 「용장사(龍藏寺) 독묘루(獨妙樓)」와 김극기(金克己)의 시 「용장사」를 통하여 고려 명종 대에도 널리 알려진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용장사임진왜란 때 한 차례 소실되었다가 1630년 중건되었고 1635년 불경 간행에 힘쓰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소실과 중건이 이루어지다가 동학농민운동 기간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용장사지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일대에 있다.

[현황]

용장사에서는 1635년(인조 13) 4월부터 9월까지 11종의 불서를 간행하였는데 불서들은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당시 판각한 목판 실물 1장[楞嚴經 刊記板]은 고창 선운사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용장사의 말사의 하나였던 묘덕암이 있던 곳에서는 ‘강희 5년[1666년(현종 7)]’이 새겨진 기와 파편이 수습되었으며, 석탄암으로 여겨지는 석탄사에는 오층 석탑이 현재까지 전한다.

[의의와 평가]

용장사는 후백제 견훤에 의하여 세워진 절로, 후백제 시대에 창건된 사찰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후백제 관련 자료로 가치가 있다. 또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쳐 꾸준히 출판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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