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22 |
---|---|
한자 | 同義紀念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19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석 |
건립 시기/일시 | 1928년![]()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6년 7월 26일![]() |
현 소재지 | 동의기념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193
![]()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최익현|임병찬|오계업|박재규|박재구 |
재질 | 대리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60.5㎝[너비]|163㎝[높이]|31㎝[두께] |
소유자 | 정읍시 |
관리자 | 정읍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10호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하청사와 비 건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일제 강점기 비석.
[개설]
동의기념비(同義紀念碑)는 1928년 하청사(河淸祠)를 건립하고, 비석을 세우는 데 동의한 유림 264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으로 1929년 건립되었다. 2016년 7월 26일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1928년 이희봉, 권영모 등 유림 34인이 발의하여 일본에 항거한 애국지사 최익현, 임병찬, 오계업, 박재규, 박재구 등 5인을 향사하기 위하여 하청사를 건립하였다. 동의기념비는 1929년 유림 264명이 하청사와 비를 건립하는 데 동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하청사 오른쪽에 세웠다. 하청사는 1950년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현재는 동의기념비만 남아 있다.
[위치]
동의기념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193에 있다.
[형태]
동의기념비는 화강암의 사각형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위에는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얹었다. 중앙에 ‘동의기념비(同義紀念碑)’라고 쓰고 아래에 ‘병오지기유(丙午至己酉)’와 ‘경술지갑인(庚戌至甲寅)’이라 쓰여 있다. 병오년[1906년]부터 기유년[1909년]까지, 경술년[1910년]부터 갑인년[1914년]까지의 의병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비석은 너비 60.5㎝, 높이 163㎝, 두께 31㎝이다.
[금석문]
비석 전면에는 하청사를 건립하고 비를 세우는 데 동의한 ‘맹주 참판 최익현(盟主 參判 崔益鉉)’을 비롯하여 유림 264명의 이름을 새기고, 뒷면에는 비석을 건립한 뜻을 새겼다. 비문은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썼다. 동의기념비에는 유림 26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현황]
동의기념비는 주변으로 시멘트 벽돌을 쌓고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1칸의 출입문을 만들었다. 출입문에는 태극무늬를 그렸다.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정면 1칸, 측면 1칸, 홑처마, 맞배지붕의 보호각이 있다. 보호각에는 방풍판을 달았으며 보호각 안에 동의기념비가 있다. 동의기념비 주변은 2017년 새로 정비되었다.
[의의와 평가]
1906년 무성서원에서 면암 최익현과 돈헌 임병찬이 주도하여 일어난 병오창의는 을사늑약 이후 전라도 최초의 의병이라는 점, 병오창의를 계기로 의병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의병이 독립군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있다. 동의기념비는 최익현을 비롯한 유림의 뜻을 기리는 장소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