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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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烈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전통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잘 섬겼던 아들과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개설]
조선에서는 유학(儒學)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이며,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가치관을 널리 보급하였다. 그 결과 학자, 충신, 효자와 열녀를 관직보다 우선시하는 덕목으로 삼았다. 또한, 『삼강록(三綱錄)』 등의 책을 발간하여 충신과 효자·열녀를 선양하는 사업을 병행하였다. 또한 국가에서는 이들에게 정려(旌閭)를 내려 표창하였고, 문중에서는 가격(家格)[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을 높이기 위하여 정려 받기를 원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충·효·열의 행적이 두드러진 사람들에게 많은 정려를 내렸다.
[정읍의 효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정읍현 효자 조에는 조선 시대 인물로 전극공(全克恭), 전사용(全思用)이 기록되어 있다. 태인현 효자 조에는 조선 시대 허중민(許仲民), 박윤근(朴允斤), 경례손(景禮孫)이 있다.
정읍 지역에서 기록된 효자는 다음과 같다. 전극공(全克恭), 전사용(全思用), 류장춘(柳長春), 고운익(高雲翼), 송인지(宋仁智), 김하익(金夏翊), 임한일(任漢一), 김리성(金履成), 황리정(黃履正), 김창도(金昌道), 류성(柳惺), 손경엽(孫景曄), 박상신(朴尙信), 김인성(金麟成), 김용혁(金龍赫), 손철우(孫哲宇), 안세언(安世彦), 안정수(安政壽), 박두원(朴斗元), 김단(金檀), 김영균(金榮均), 김기환(金基煥), 최상찬(崔商纘), 류기채(柳騏采), 박덕래(朴德來), 김윤상(金胤祥), 김기혁(金冀赫), 김종순(金鍾淳), 임철신(林哲臣), 임관신(林寬臣), 송정열(宋廷烈), 송의섭(宋宜燮), 송인복(宋仁復), 김노상(金魯相), 김동혁(金東赫), 송재창(宋裁昶), 장복휴(張福休), 옥석현(玉碩鉉), 이광희(李光熙), 김흠(金欽), 이윤화(李潤華), 김인재(金堙載), 김항서(金恒瑞), 하동귀(河東龜), 안요묵(安堯黙), 김명권(金命權), 강덕중(姜德重), 박해두(朴海斗), 이창수(李昌銖), 최찬수(崔燦秀), 이민주(李民周), 김상갑(金商甲), 손업선(孫嶪先), 이귀성(李貴省), 김현구(金鉉九), 은성우(殷成雨), 고동신(高東信), 박노상(朴魯相), 이규성(李圭星), 김영곤(金榮坤), 남태원(南台元), 김순국(金舜國), 유기원(劉基源), 장응한(張膺漢), 이민환(李敏煥), 이학조(李學租), 최진석(崔鎭錫), 박재옥(朴齋玉), 이방서(李芳緖), 송지두(宋指斗), 유성추(柳星樞), 이기진(李基震), 송상재(宋相載), 이동서(李東緖), 은세룡(殷世龍), 유긍연(柳兢淵), 오종환(吳種煥), 김덕홍(金德弘), 은정기(殷廷基), 이근형(李根馨), 박관현(朴琯鉉), 조정태(趙廷泰), 나의채(羅宜采), 김기주(金騏柱), 안관진(安瓘鎭), 김락(金洛), 김만기(金晩器), 김양기(金良基), 나홍인(羅弘仁), 최대수(崔大秀)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기록에서 누락된 효자들이 적지 않으며, 현대에 와서 정읍시 등에서 효행상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정읍의 열녀]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읍현과 고부군의 열녀 조에는 고려 시대 이득인(李得仁)의 아내 고부 이씨(古阜 李氏)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정읍현 열녀 조에 고려 시대 경덕의(景德儀)의 부인 창평 안씨(昌平 安氏)가 있다. 고부군 열녀 조에는 조선 시대 아전 이성호(李成浩)의 부인 금이(今伊)가 기록되어 있다. 태인현 열녀 조에는 조선 시대의 인물로 봉례랑 박조(朴慥)의 부인 구고 임씨(九皐 林氏)가 실려 있다.
이 밖에도 정읍 지역에서 기록된 열녀는 김흔(金昕)의 처 언양 김씨, 이허량(李許樑)의 처 고흥 유씨, 배인범(裵仁範)의 처 경주 김씨, 김창도(金昌道)의 처 영월 엄씨, 김찬영(金璨榮)의 처 신평 송씨, 류연홍(柳然洪)의 처 남양 홍씨, 류연도(柳然道)의 처 울산 김씨, 김춘식(金春植)의 처 의령 남씨, 정운석(鄭雲錫)의 처 함열 남궁씨, 박문효(朴文孝)의 처 진천 송씨, 이경국(李敬國)의 처 여산 송씨, 문선명(文鮮明)의 처 밀양 박씨, 김준(金浚)의 처 김씨, 김욱필(金郁弼)의 처 분성 김씨, 송영춘(宋榮春)의 처 해주 오씨, 이병호(李秉昊)의 처 안동 권씨, 박종림(朴宗林)의 처 김해 김씨, 김시운(金時運)의 처 시산 허씨, 김재흠(金裁欽)의 처 나주 나씨, 김영주(金永冑)의 처 양천 허씨, 정동학(鄭東鶴)의 처 남양 홍씨, 김광철(金光喆)의 처 전주 이씨, 류흥록(柳興祿)의 처 탐진 안씨, 유기원(劉基源)의 처 삭령 최씨, 류기인(柳冀寅)의 처 도강 김씨, 최경엽의 처 전주 이씨, 조성승(曺盛承)의 처 전주 최씨, 강덕중(姜德重)의 처 김해 김씨, 최필성(崔必成)의 처 하양 허씨, 최석봉(崔錫鳳)의 처 광산 김씨, 김명(金明)의 처 나주 나씨, 이시채(李始彩)의 처 고흥 류씨 등이 있다. 이들 외에도 기록에서 누락된 효녀와 열녀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며, 현대에 와서 정읍시 등에서 효녀상이나 열부상을 받은 인물들은 누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