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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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德 |
영어공식명칭 | Gim Chide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원기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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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7월 28일 - 김치덕 이성화 의진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7월 23일 - 김치덕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2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거주|이주지 | 정읍군 북면 구양곡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일대![]() |
활동지 |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활동지 | 순창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치덕(金致德)[1877~?]은 1877년(고종 14) 정읍에서 태어나 정읍군 북면 구양곡[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일대]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해산 군인·유생·평민들이 참여하는 후기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정읍 지역에서도 이성화(李成化)·김영백(金永伯)·박춘화(朴春化)·신보현(申甫鉉) 등이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고, 김치덕은 1908년 7월 28일 이성화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1909년 당시 이성화 의진은 다른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일본의 경찰·헌병 등과 교전을 벌이면서 군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1909년 4월에는 고부·순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신보현 의진과 연합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김치덕은 이성화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25명과 함께 화승총과 칼로 무장하고 정읍·고부·태인·순창 지역을 왕래하며 의병 항쟁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치덕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