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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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余性白 |
영어공식명칭 | Yeo Seongbae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안후상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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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여성백 보천교 후천선경 신정부 건설운동에 참여, 구속되어 징역 1년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 여성백 항일 비밀 결사 신인동맹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2월 - 여성백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10월 6일 - 여성백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5월 19일![]()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출생지 | 옥계리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옥계리 |
거주|이주지 | 태성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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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읍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여성백(余性白)[1899~1944]은 1899년 4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옥계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태성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 거주하면서 보천교(普天敎)의 후천선경(後天仙境) 신정부 건설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다.
보천교가 강제 해체된 1938년 4월경에 여성백은 정읍군 태인면[현 정읍시 태인면]에서 정인표(鄭寅杓)가 주도하던 신과 인간이 일제를 몰아내기 위하여 맺은 동맹이라는 뜻의 항일 비밀 결사 신인동맹(神人同盟)에 가담하였다. 1938년 7월 15일 태인면 백산리 이진호의 집에서 정인표는 일본에 사(死) 자를, 조선에 생(生) 자를, 소화(昭和)[일본 히로히토 천황 때 사용하였던 연호로 일본 천황을 지칭]에 낙(落) 자를 각각 붙이면서 일망무지(日亡無地)라 하였다. 이는 일본은 망하고 조선은 살아난다는 뜻이었다. 또한 천지는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화를 주나니 일본은 결국 패망한다며, 우리는 조국 광복을 위하여 성심껏 기도를 계속하자고 강론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패망을 기원하는 비밀 집회를 계속하며 동지 획득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에 힘쓰던 신인동맹은 1940년 12월 밀정의 신고로 정인표 등 40여 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여성백도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3년 10월 6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4년 5월 19일 사망하였다.
[묘소]
여성백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여성백의 공적을 기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