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삼[국악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726
한자 金道三[國樂人]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감곡면 유정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은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김도삼[국악인]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42년연표보기 - 김도삼[국악인] 사망
출생지 학두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감곡면 유정리 지도보기
성격 풍물꾼
성별
본관 김해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 출신의 일제 강점기 호남우도농악 상쇠.

[개설]

김도삼(金道三)[1876~1942]은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감곡면 유정리 학두마을 출신이다. 상쇠로 활동하며 정읍농악을 널리 알렸고, 신흥종교 보천교(普天敎)의 종교 활동을 통하여 농악 운동에 동참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수많은 공연에서 뛰어난 기능을 선보이며 호남우도농악을 발전시켰는데, 특히 부포놀음과 설장구놀음을 발전시켰고, 호남우도농악 판굿을 토대로 여러 진법을 편성하여 판굿의 구성을 다채롭게 하였다. 그리하여 뛰어난 풍물꾼들을 후예로 배출하였고, 풍물놀이의 음악성을 세련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김도삼은 어려서부터 농악에 관심이 많아, 마을에 걸립패가 들어오면 따라가서 농악을 배울 정도였다고 한다. 김도삼은 상쇠 박만풍에게 배웠다고 하는데, 박만풍에 대하여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쇠가락이나 상모놀음보다는 소리와 춤에 능하였고, 특히 진풀이는 김도삼만 한 상쇠가 없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흥종교인 보천교의 농악을 도맡아 공연하면서 재정적 지원을 많이 받았고, 그 덕에 김도삼이 더욱 유명하여졌으며 김도삼이 이끈 정읍농악[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이 크게 발전하였다.

정읍농악은 1950년대 말까지 전국에 명성을 떨쳤는데, 당시 쇠는 김도삼 외에도 전광래·박성근 등이 유명하였고, 장구의 이봉문·신기섭·전사섭·김병섭 등, 채상의 정오동·백남윤·김종수·김진철 등, 고깔소고의 이조모·황재기 등이 함께하였다. 정읍농악의 특징을 보면 쇠치배는 ‘내고 달아 맺고 푸는’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고, 뻣상모 부포놀음이 발달하였다. 또한 장구는 설장구놀음이 특히 유명하였다. 특히 다른 지역의 농악과 비교하여 판굿이 복잡하게 짜여 있고 농악 진법론이 강한 특징이 있다. 이는 김도삼의 기예와 무관하지 않은데, 김도삼은 진법과 쇠가락, 상모놀음과 부포놀음에도 특출하였다. 김도삼에게 상쇠 수업을 받은 제자는 여러 지역에 많은데, 그중에서 김도삼이 은퇴한 뒤에 정읍농악을 이끌어 간 상쇠는 김광래(金光來)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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