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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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鶴鳴 |
이칭/별칭 | 계종(啓宗),학명(鶴鳴)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경석 |
출생 시기/일시 | 18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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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29년 3월 27일![]() |
출생지 | 영광군 - 전라남도 영광군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내장사 주지 |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가계]
백학명(白鶴鳴)[1867~1929]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법명은 계종(啓宗), 법호는 학명(鶴鳴)이다. 1867년(고종 4)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백학명은 1886년 순창 구암사(龜岩寺)에서 승려 설두(雪竇)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였으며, 불갑사로 들어가 승려 금화(錦華) 밑에서 출가하였다. 이후 벽송사, 선암사, 송광사 등에서 수도하였고, 구암사로 가서 강사가 되었다. 1914년경 중국과 일본의 이름난 절을 순례하고 돌아와 변산 내소사와 월명암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일으켰다. 만년인 1923년에서 1925년 사이 내장사 주지로 있으면서 벽련암 극락보전과 요사채를 중건하고 선원을 열었다. 경내에 흩어져 있는 고승들의 부도를 모아 안치하는 불사를 행하였다.
백학명은 부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등 제자들에게 반선반농(半禪半農)을 가르쳤다. 즉, 놀고먹는 중이 되어서는 안 되며, 농사일이 바로 선과 같다는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백농(白農)’이라 하였다. 백학명은 1929년 3월 27일 사망하였다.
[사상과 저술]
백학명은 불교 포교와 교육에 헌신하였으며, 인근의 불자들을 모아 불경을 가르치는 등 침체에 빠져 있는 내장사의 중흥을 꾀하였다. 「달마도(達磨圖)」를 잘 그렸다고 하며, 인생의 무상과 자비를 「원적가(圓寂歌)」, 「왕생가(往生歌)」, 「신년가(新年歌)」, 「해탈곡(解脫曲)」, 「선원곡(禪園曲)」, 「참선곡(參禪曲)」, 「망월가(望月歌)」 등의 노래로 가르쳤다. 백학명은 선학원의 선우공제회 발기인으로도 참여하였다. 선과 농사가 다르지 않다는 선농일여의 사상을 지녔고, 내장선원을 백장선사의 사상을 잇는 ‘반선반농’ 실천의 장소로 활용하였다. 이 같은 학명의 선농일여 사상은 원불교의 핵심 교리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저서로는 『백농유고(白農遺稿)』가 있었으나 소실되었다고 한다.
[묘소]
백학명의 사리를 모신 부도는 내장사 입구 오른편 부도전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