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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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炯觀 |
영어공식명칭 | Gim Hyeonggwan |
이칭/별칭 | 극부(克孚),건암(健菴),기산(麒山),김형익(金炯益)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석 |
출생 시기/일시 | 19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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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98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3년 4월 9일 - 김형관 창동서원 배향 |
출생지 | 창동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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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강학지 | 전주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
묘소|단소 | 김형관 묘소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산수동 |
사당|배향지 | 창동서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창동리 609-1]![]()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부안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신의 학자.
[가계]
김형관(金炯觀)[1915~1998]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극부(克孚), 호는 건암(健菴)·기산(麒山)이다. 어릴 적 이름은 김형익(金炯益)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석규(金錫圭)이고, 할아버지는 김낙진(金洛進)이다. 아버지는 김택술(金澤述)이고, 어머니는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아들은 김달중 등이다.
[활동 사항]
김형관은 1915년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에서 태어났다. 전우(田愚)[1841~1922]의 제자인 아버지 김택술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1954년에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는 전우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계지술사(繼志述事)[선인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대의 사업을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의 삶을 실천하였다. 전주 기린봉 주변 중노송동 마당재 근처에 기린정사(麒麟精舍)를 짓고 기거하면서 평생 동안 한복과 상투차림을 고수하며 선현들의 학문을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전북대학교의 송준호·이강오·이병기 교수 등과 교유하면서 한문 전적의 해석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한문 배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김형관은 아버지 김택술의 문집인 『후창집(後滄集)』을 직접 편찬하였으며, 이후 전우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출신의 한학자들 문집 발간에 힘을 보탰다. 특히 전우의 저작을 집대성하는 데 매진하여 1975년 화도수정본(華島手定本)을 펴내면서 이전의 진주본(晉州本)과 용동본(龍洞本)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1984년에는 『전우전집(田愚全集)』을 발간하여 간재학 연구의 기틀을 다지는 한편, 전우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 받은 학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공자(孔子)의 77대 직계 후손으로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적 유학자인 공덕성(孔德成)과는 국경을 초월하여 학문적으로 깊게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형관의 저술로는 김철중(金徹重)이 편집하여 2010년 대전 회상사에서 발간한 『건암문고(健菴文藁)』 20권이 있다. 권1에서 4권까지는 서(書), 5권에서 8권은 잡저(雜著), 9권과 10권은 서(序)와 기(記), 11권과 12권은 제발(題跋)·명(銘)·찬(贊)·혼서(婚書)·고축문(告祝文)·제문(祭文)·상량문(上樑文), 13권과 14권은 신도비(神道碑)·비(碑)·묘갈명(墓碣銘), 15권과 16권은 묘갈명(墓碣銘), 17권과 18권은 묘표(墓表), 19권과 20권은 행장(行狀)·전(傳)·천장(薦狀)·시(詩)이다.
[묘소]
김형관의 묘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산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형관은 2023년 4월 9일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창동리 609-1]에 있는 창동서원(滄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