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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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滄東書院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창동리 609-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건립 시기/일시 | 196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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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4월 1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창동서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창동서원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창동서원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현 소재지 | 창동서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창동리 609-1]![]() |
성격 | 서원 |
양식 | 전학후묘 |
정면 칸수 | 4칸[강당]|3칸[사당]|4칸[고직사] |
측면 칸수 | 2칸[강당]|2칸[사당]|2칸[고직사] |
소유자 | 부안 김씨 종중 |
관리자 | 부안 김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서원 .
[개설]
창동서원(滄東書院)은 고부 출신의 근대 유학자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1884~1954]을 배향한 서원이다. 김택술은 본관이 부안이고 자는 종현(鍾賢), 호는 후창이며, 창동에서 출생하였다. ‘후창’이라는 호는 스승 간재 전우가 지어 준 것이다. 전우의 고제(高弟)로 도학과 문장이 뛰어났다.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일제 항거 의식이 강하였다. 일찍이 최익현의 의병에 참여하였다. 문집 『후창집』 16책이 전한다. 문집에는 역사적 명소에 대한 글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창동서원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위치]
창동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골길 38-27[창동리 609-1]에 있다.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신송(新松)마을에 있는 서원으로 창동리는 조선 시대 고부군 궁동면 지역이다. 이평중학교에서 남쪽으로 800m 정도 떨어져 있다.
[변천]
1965년 유림들의 발의로 김택술을 모시는 창동서원이 건립되었으며, 김택술은 1978년 간재 전우를 모신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계양사에 배향되었다.
[형태]
창동서원은 입구 오른쪽 산자락에 김창술의 아버지 벽봉(碧峯) 낙진(洛進)의 묘소가 있다. 외삼문 ‘집의문(集義門)’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양호재(養浩齋)’, ‘낙요당(樂要堂)’ 편액이 걸려 있는 강당과 우측에 고직사 건물이 있다. 묘정 중앙, 내삼문 앞에 창동서원 묘정비가 서 있다. 내삼문을 지나면 김창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 있고 ‘창동서원’ 편액이 걸려 있다. 서원 건립 전에 유림들이 글을 읽던 불망실(不忘室), 낙요당 두 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강당과 고직사는 각각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이다.
[현황]
창동서원은 관리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외삼문에 안내함을 설치하여 제향 유인물을 비치하고 있다. 향사일은 양력 4월 두 번째 일요일이다. 부안 김씨 종중이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