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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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陽書院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상흑길 44[흑암동 20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건립 시기/일시 | 19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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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2년 - 노양서원 사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3년 - 노양서원 내삼문 개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6년 - 노양서원 강당 중건 |
현 소재지 | 노양서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상흑길 44[흑암동 203]![]() |
성격 | 서원 |
양식 | 전학후묘 |
정면 칸수 | 3칸[강당]|3칸[사당] |
측면 칸수 | 2칸[강당]|3칸[사당]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노양서원(魯陽書院)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과 두남(斗南) 박세경(朴世經)을 향사한 서원이다. 송시열은 18~19세기 노론 집권의 기반을 놓은 사림의 영수로 우의정을 지냈다. 숙종이 장희빈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는 것에 반대하여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국문차 서울로 압송되다가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박세경은 본관이 밀양이며, 1626년(인조 4) 고부 금정촌(金井村)[현재의 정읍시 농소동 현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송시열이 남북으로 유배될 때 수행하여 6년간 대소사를 살폈다. 송시열이 박세경을 칭찬하며 “성현이 되는 데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위치]
노양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상흑길 44[흑암동 203]에 있다. ‘상흑마을’ 표지석을 보고 따라가면 보호수와 모정이 나온다. 여기에서 쉼터 건물 뒷길로 올라가면 마을 제일 위에 노양서원이 있다. 상흑마을 바로 아래 하흑마을[현암마을]에 구한말 박만환이 창건하여 후진을 양성한 정읍 영주정사(瀛州精舍)와 영양사(瀛陽祠)가 있다. 흑암마을은 마을 가운데 검은색 바위가 있어서 ‘검은 바우’라고 불렸다. 박씨 집성촌으로 박세경의 아버지 박재(朴載) 때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변천]
송시열이 정읍에서 사사(賜死)된 후 고암서원(考巖書院)을 건립하여 향사하였으나 대원군 때 훼철되고 복설되지 못하자 유림들이 뜻을 모아 1959년 노양서원을 창건하였다. 송시열을 주벽으로 하여 박세경을 배향하였으며, 1962년 송시열 영정을 봉안하였다. 사당은 1992년 중건되고, 강당은 1996년 중건되었다. 내삼문은 1993년 개축하였다.
[형태]
노양서원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이 있고, 강당 뒤로 내삼문,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강당 옆에 두남박선생유허비가 있으며, 사당 앞쪽으로 묘정비가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며, ‘노양서원(魯陽書院)’ 편액이 걸려 있고, 안쪽으로 ‘산앙재(山仰齊)’ 편액이 걸려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이며, ‘현암사(玄巖祠)’ 편액이 걸려 있다. 내삼문에는 ‘경앙문(景仰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노양서원의 향사일은 음력 3월 1일이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