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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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慕忠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대칠길 20-5[산성리 산9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6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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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이전 시기/일시 | 1979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9년 - 모충사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8년 - 모충사 증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11월 9일![]() |
현 소재지 | 모충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대칠길 20-5[산성리 산97]![]() |
원소재지 | 모충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칠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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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권혁채 |
문화재 지정 번호 |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
[개설]
모충사(慕忠祠)는 1667년(현종 8)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백광언(白光彦)[1554~1592]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출생지인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칠석리에 세운 사우이다. 주벽인 백광언은 조선 시대 무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진해현감(鎭海縣監), 고성현감(固城縣令), 길주판관(吉州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북상하다가 용인(龍仁)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배향인 전덕린(全德麟), 송지순(宋之順), 이지시(李之詩), 이지례(李之禮)[이지시의 아우], 송인신(宋寅臣)[송지순의 아들], 권극평(權克平) 등은 임진왜란 때 창의한 사람들이다. 권극평을 제외하고는 모두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최응립(崔應立)과 백함생(白咸生)[백광언의 아들]은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함께 순절하였다. 모충사는 2005년 11월 9일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모충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대칠길 20-5[산성리 산97]에 있다. 남서쪽으로 칠전경로당이 있다.
[변천]
모충사는 1667년 건립되었고 1702년(숙종 28) 전덕린, 송지순, 이지시, 이지례, 송인신 등을 추배(追配)하였다. 1806년(순조 6) 권극평을 추배하고, 1842년(헌종 8) 최응립, 백함생 등을 각각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1924년 권영모가 현재의 산성리에 단(壇)을 세워 향사하다가 1979년 복설(復設)하였다. 1993년 11월 모충사 관리인 권혁채와 후손 등이 추진위를 구성하여 1998년 강당과 삼문을 완공하였다.
[형태]
모충사 사우 1동은 맞배지붕, 목조, 와즙, 남향의 건물이다. 이외에 외삼문에 해당하는 ‘충의문(忠義門)’,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 학위당(學爲堂)이 있다. 또한 충의문 앞에 ‘모충사 복원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현황]
모충사는 배향인의 후손인 권혁채의 노력으로 관리되어 오다가 2005년 11월 9일 정읍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정읍시의 재정 지원으로 보수 공사를 하였으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