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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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山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산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7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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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4년![]() |
현 소재지 | 송산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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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송산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
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
[개설]
송산사(松山祠)는 1788년(정조 12)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창건되었다. 김대립(金大立)[1550~?]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김응빈(金應贇), 김정(金濎), 김감(金堪), 김급(金汲), 송치중(宋致中) 등을 배향하고 있다. 김대립은 태인 고현 출신으로,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향리에 호호정(浩浩亭)을 세웠으나 정여립(鄭汝立)이 근처에 정자를 세우자 정여립과의 교유를 꺼려 자신의 정자를 헐어 버렸다고 한다. 김대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같은 도강 김씨(道康 金氏) 일족과 함께 창의하여 장성(長城) 등지에서 공을 세웠다. 김대립은 광해군 때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에 낙담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자연을 벗 삼으며 은둔 생활을 즐겼다. 송정(松亭)이라는 정자가 음풍농월하였던 장소로, 김대립과 뜻을 같이하던 사람들을 ‘7광(七狂) 10현(十賢)’이라고 불렀다. 송산사의 배향자들 중에서 김대립과 김감은 7광, 김감과 김급은 10현에 속한다.
[위치]
송산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산3 성황산 동쪽 기슭에 있다. 인근에 있는 필양사(泌陽祠)와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사이에 난 계단을 통하여 산쪽으로 올라가면 송산사가 나온다.
[변천]
송산사는 1788년 건립되었고, 1868년(고종 5) 정부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54년 현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
[형태]
송산사는 출입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바로 사당 건물이 나오고, 담장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현황]
송산사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