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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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大立 |
영어공식명칭 | Kim Daerip |
이칭/별칭 | 신부(信夫),월봉(月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출생 시기/일시 | 15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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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고현내면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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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고현내면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
사당|배향지 | 송산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12-3[무성리 310]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도강 |
대표 관직|경력 | 사포서별제 |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문신.
[가계]
김대립(金大立)[1550~?]의 본관은 도강(道康)이며, 자는 신부(信夫), 호는 월봉(月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희윤(金希尹)이고, 할아버지는 삼척부사를 지낸 김약회(金若晦), 아버지는 김원(金元)이다. 부인은 함양 박씨(咸陽 朴氏)이고, 아들은 김관(金灌)이다. 사위는 양시진(楊時晉)이다.
[활동 사항]
김대립은 1550년(명종 5) 태인(泰仁) 고현내면(古縣內面)[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에서 태어났다.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천거로 사포서별제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복억(金福億)·김후진(金後進)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김대립은 처가 쪽 일족인 정여립(鄭汝立)과 가까운 곳에 살았으나 가까이하지 않아 기축옥사[정여립 모반 사건] 때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하고 유폐하였을 때는 상소를 올려 항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뜻을 같이한 김응빈(金應贇)·김감(金堪)·송치중(宋致中)·송민고(宋民古)·이상형(李尙馨)·이탁(李逴) 등과 송정에 모여 세상을 등지고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하였다. 사람들은 이들을 ‘칠광(七狂)’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김대립은 1788년(정조 12)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12-3[무성리 310]에 있는 송산사(松山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