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41
한자 君子亭
영어공식명칭 KunjaJeong
이칭/별칭 연정(蓮亭)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영주로 532-7[고부리 6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 군자정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764년 - 군자정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99년 - 군자정 중수 착공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5년 - 군자정 중수 완공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0년 - 군자정에 일본인 소학교 개교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6년 - 군자정 개방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6월 30일연표보기 - 군자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군자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군자정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군자정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현 소재지 군자정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영주로 532-7[고부리 65]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목조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고부노인회
관리자 고부노인회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개설]

군자정(君子亭)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에 있는 누정인데, 군자정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후기 마을에 인재가 나오지 않고 과거 급제자가 나오지 않자 연정이 황폐한 탓이라 하여 연못을 파내고 누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즉, 1673년(현종 14) 고부군수 이후선(李厚先)이 연못을 파고 정자를 개수하였다. 이에 비로소 홍백(紅白)의 연꽃이 다시 피면서 과거에 급제하는 인재가 계속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군자정은 고장의 운명과 관련된 향운설화(鄕運說話)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군자정’이라는 이름은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칭한 데서 유래하였다. 한편으로 연못 가운데 있어 사방이 연꽃으로 둘러 싸인 정자여서 연정(蓮亭)이라고도 한다. 1990년 6월 30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군자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영주로 532-7[고부리 65]에 있다.

[변천]

군자정은 1673년 고부군수 이후선이 건립하였고, 1764년 군수 이세형(李世馨)이 중수하였는데 1870년경 소멸되었다. 1899년(고종 36) 군수 조규희(趙珪熙)가 다시 연못을 파고 군내 19명의 인사로부터 몇천 량의 기부금을 받아 1901년 봄부터 중수 공사를 시작하여 1905년 군수 이창익(李昌翼) 때 완공하였다. 1910년에는 군자정에서 일본인 소학교가 개교하였으며, 이후 1926년 학교를 이전하면서 군자정을 진사 은성우(殷成雨)가 불하받아 은씨 문중에 기증하여 주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개방 이후 사정(射亭)으로 이용되었으며, 여러 번 보수하면서 유지되어 왔다. 한때 일본 현병대 주재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노인회소(老人會所)로 고부노인회 소유이다.

[형태]

군자정은 연못 가운데에 있으며 마을 도로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은 2단의 석축 위에 있는데 정면과 우측면에 비석군이 있고 주위에 약간의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3칸이다. 평면은 가운데 2칸의 방이 있고 좌측 1칸이 마루로 되어 있으며, 우측 1칸이 중간의 단이고 전면 1칸이 마루로 되어 있다. 온돌방 우측에는 사다리를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는 다락방이 있다. 구조는 낮은 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화강암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이다. 내부 가구는 5량 집이다.

군자정의 현판은 서예가 백천(白川) 김상원(金商源)의 글씨이다. 군자정 내부에는 용인재(容忍齋) 노희원(盧希遠)[1759~1819]의 「군자정기(君子亭記)」, 1936년에 쓴 은상선(殷庠善)의 「군자정기」와 1937년 경운(耕雲) 은이철(殷以澈)이 쓴 「군자정기」가 있으며 이 밖에도 여러 문객들의 시편이 편액으로 걸려 있다. 1837년(헌종 3) 군수 홍익모(洪益謨)가 쓴 시가 현판에 새겨져 있는데, 홍익모의 시는 군자정 주위의 언덕에는 무성한 숲과 대나무가 많이 있고, 뜰 앞에는 아름드리 노거송(老巨松) 두 그루가 있는데 한 그루는 연못 아래 누워 있고, 한 그루는 정자의 처마 아래를 덮어 군자정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는 내용이다. 현재 노거송은 남아 있지 않다.

[현황]

군자정은 주변 연못을 잘 가꾸어 놓아 양호한 누정 경관을 보여 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군자정은 주민들이 지역을 위하여 건립한 누정으로서 향운설화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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