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59
한자 井邑老休齋
이칭/별칭 노휴재,군자정,양사재,양로재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평7길 49[시기동 354-9]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안선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군자정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군자정에서 양사재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양사재에서 양로재로 개칭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2년 - 양로재 증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8년 - 양로재 중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양로재에서 정읍노휴재로 개칭
현 소재지 정읍노휴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평7길 49[시기동 354-9]지도보기
성격 가옥
양식 겹처마 팔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을유노인회
관리자 을유노인회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기동에 있는 개항기 근대 한옥.

[개설]

정읍노휴재(井邑老休齋)는 1905년 정읍 지역의 유지 13명이 모여 활을 쏘는 사정(射亭)을 건립하였다.

[위치]

정읍노휴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평7길 49[시기동 354-9]에 있다. 인근에 전통 시장인 샘고을시장이 있다.

[변천]

1905년 정읍 지역의 유지 13명이 모여 활을 쏘는 사정을 건립하고 군자정이라 하였다. 1919년 일부 회원들이 3·1운동에 가담하면서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일제가 활쏘기 모임을 정리하면서 사정의 기능을 잃게 되었고 양사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2년 양로재로 이름을 바꾸고 한때 모임이 분리되면서 청년회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25년 이후에는 야학당을 개설하여 교육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1946년 을유노인회가 결성되면서 다시 모임이 활성화되었으며 1948년 건물을 중수하고 정읍노휴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읍노휴재 회원들은 창건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정읍노휴재 백년사』를 간행하였으며 2008년 광복 60년을 맞이하여 3인의 애국지사 공적비를 세우고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정읍노휴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겹처마 팔작집이다. 전면 퇴칸은 마루를 깔았으며 왼쪽 2칸은 대청, 오른쪽 2칸은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에는 ‘노휴재’ 편액을 걸고 방과 대청 앞에도 각각 편액을 걸었다.

[현황]

정읍노휴재는 을유노인회에서 관리 및 소유하고 있으며 지역 노인들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 연수노인문제연구소, 정읍노휴재여성회관 등이 들어서 있으며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마당 한 켠에는 ‘정읍노휴재 기념비’와 ‘애국지사 항일운동 공적비’ 등 여러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정읍노휴재는 근대 개항기 계 조직의 결성과 건축 활동을 잘 보여 주는 건물이다.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애국지사들이 회합하던 장소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