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조리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65
한자 福笊籬
영어공식명칭 Bokjori
이칭/별칭 조리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성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생산|제작처 상부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하부리 지도보기
성격 의례 도구
재질 조릿대
용도 기복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정월 초에 복을 기원하며 걸어 놓는 의례 도구.

[개설]

조리는 쌀을 일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도구이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든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주된 곡식으로 쌀을 다루어 온 농경 민족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여 왔다. 정초에 새로 장만하는 조리는 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특별히 ‘복조리’라 하는데, 복조리는 쌀을 일듯이 그해의 복을 조리로 일어 얻는다는 의미에서 부엌이나 마루 등 집 안에 걸어 두었다. 도정이 점차 기계화·현대화되면서 쌀에 든 불순물을 제거하는 조리의 본래 기능이 필요성을 잃었으나, 조리 생산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복을 부르는 복조리로서 지니는 상징성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는 입암면 하부리 상부마을을 중심으로 복조리가 전승되어 왔다. 상부마을은 주민 공동체가 조리를 만들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을 가까이에 있는 입암산에서 야생하던 대나무 중 조릿대[산대]를 이용하여 복조리를 생산하여 왔다.

[연원 및 변천]

『정읍시사』에 “정읍시 입암면 하부리 상부마을은 김해 김씨가 주거 성씨로서 성촌년대는 200년 이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부마을 일대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구,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군, 원삼국 시대 마한의 주거지군과 무덤 유적이 확인된 바, 고대의 마을 흔적이 발견된다. 상부마을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복조리를 생산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 구술과 문헌 자료를 통하여 밝혀진 바로는 현재 거주하는 주민의 선조가 약 300년 전 정착하면서 주변 산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조릿대를 이용하여 조리를 만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형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죽사로 엮어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든다.

[제작]

전통적으로 조리를 만들 때는 우선 산죽을 채취한 다음 4등분으로 쪼개어 건조한다. 그다음으로 불리기, 머릿대 자르기, 날대 놓기, 엮기, 옆선 정리, 오무르기, 손잡이 묶기 등의 과정을 거쳐 제작한다. 조리를 만드는 주재료는 물론 조릿대인데, 풀, 짚, 인동초 줄기 등 다양한 재료가 활용되었다. 조릿대는 야산에서 자라고 1~2m 정도 크기의 작은 대나무이다. 산에서 자란다는 뜻으로 산죽 또는 지죽(地竹)이라 불린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복조리는 보통 있던 것을 활용하여 쓰지 않고 복조리 장수에게서 새로 산 것을 걸었다.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여겨서 섣달그믐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 사려!” 하고 외치며 복조리를 파는 상인들이 골목을 돌아다녔고, 주부들은 앞다투어 복조리를 구매하고자 하는 진풍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한 해 동안 사용할 만큼 조리를 구매하여 문 위나 벽 등에 걸어 두었는데 이러한 행위를 함으로써 장수와 재복을 기원하였다.

[현황]

한때는 복조리 하면 상부마을이 ‘복조리마을’로 알려질 만큼 정읍에서도 으뜸으로 꼽힐 정도였으나, 2000년대 이후로는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는 맥이 거의 끊긴 상태이다. 여느 전통 공예품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대체용품과 값싼 중국산 제품에 밀려 수요가 줄어든 지 이미 오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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