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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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生 儀禮 |
영어공식명칭 | Lifetime Ritual |
이칭/별칭 | 일생 의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승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행하는 통과의례.
[개설]
평생 의례는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출생, 성년, 결혼, 사망 등 생애의 중요한 단계마다 행하는 의례를 말하며, 실제로는 한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의례와 죽음 이후의 추모 행사까지 모두 포함한다. 개인이 일생 동안 거치는 의례이므로 ‘일생 의례’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평생 의례는 전통적으로 ‘관혼상제’로 대표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평생 의례의 양태가 외래문화의 영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거나 소멸하고 있으며, 출산 의례, 육아 의례, 수연례가 중요한 의례로 대두하여 평생 의례의 범주가 확대되기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의 평생 의례는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행하여 온 절차와 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세부적으로는 지역이나 집안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정읍의 평생 의례에 관하여 2007년 70~80대 제보자들에게서 현장 조사를 진행하여 얻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현장 조사 내용은 정읍 지역에서 행하여졌거나 제보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대략 1930년대 전후의 모습이다.
[출산 의례]
정읍 지역의 출산 의례는 임신을 기원하는 시기부터 출산 후 일정 기간의 육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행하여진다. 출산 의례는 기자속(祈子俗), 산전속(産前俗), 해산속(解産俗), 산후속(産後俗), 육아속(育兒俗)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결혼 후에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자식, 특히 아들을 낳으려고 어떤 대상에 치성을 드리고 주술성에 의존하는 행위를 하였다. 영원면 장재리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의 옷을 빌려다 입기도 하였다. 삼신을 맞아들이는 의례를 행하기도 하였는데, 떡을 하여 떡시루를 마을 샘에 가져가서 빌고 또 집으로 가져와서 성주에게도 비는 식이었다.
임신부는 음식부터 행동까지 다양한 금기를 지키고 태교에 힘썼다. 출산을 앞두고 산모가 먹을 미역을 사올 때는 끊어서 가져오면 안 되었고, 한 지붕 아래에서 두 사람이 임신하면 아이 둘의 출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산모 한 사람은 친정으로 갔다. 출산 후 산모는 삼신상에 놓아 두었던 쌀과 미역으로 첫국밥을 하여 먹고, 이틀 정도 지나서 수유를 하였다. 영원면 지역에서는 어렵게 임신을 하여 귀한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첫이레, 세이레, 망중이레[일곱 이레] 때 삼신상에 떡을 하여 올리기도 하였다.
또 산모가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마을 우물이나 샘물에 가서 젖을 타 오기도 하였다. 젖을 타 온다는 것은 깨끗한 은박지에다 체를 엎어 놓고 샘물을 떠 부으며 “이 쳇구녁[쳇구멍]같이 젖 나오게 해 달라”라고 비는 것이다. 이 물을 산모가 있는 방 윗목에 떠다 놓고 빌거나 산모가 마시면 일주일 정도 후에 젖이 나왔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산모는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산후 조리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출산 의례는 생략되거나 대체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제 과학적 근거가 약한 금기나 의례는 지켜지지 않지만, 임신부에게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조심하는 태도가 강조되고 태교도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육아 의례와 성년 의례]
아이의 백일과 첫돌에는 아이의 무병과 장수를 기원하며 음식을 장만하고 친척과 이웃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다. 정읍 지역에서는 백일에는 흰떡을 하여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 정도로 하고, 큰 잔치를 하기보다는 식구들이 미역국과 떡을 하여 먹었다. 보통은 백일보다 돌을 중시하는데, 돌떡은 삼신상에 올려 아이가 오래 살고 잘되라고 빌었다. 첫돌 때는 돌상을 차리는데 상에 실, 돈, 연필 등을 놓고 아이가 잡는 물건으로 아이의 장래를 점치는 ‘돌잡이’를 한다. 돌잡이는 지금도 돌잔치 이벤트로 진행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에는 돌잔치를 집에서 하지 않고 연회장을 갖춘 식당이나 호텔 등의 장소를 대관하여 진행하며 규모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잔치를 간소화하는 대신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촬영하여 앨범이나 비디오로 제작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통 유교식 성인식은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笄禮)라 한다. 남자는 상투를 짜고 여자는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 의례이다. 노동 현장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한 사람 몫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참 농부는 두레에 참여하여 인사치레로 두레 구성원 전체에게 술을 대접하는 ‘진서턱[진세턱]’을 내고 나서 장정과 동등한 노동력과 임금을 인정받았다.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와석마을에서는 남자 아이가 성인이 되어 두레패의 일원으로서 노동할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들독들기’를 하였다. ‘들독들기’는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 있는 들독을 앞으로 들어 올려 등 뒤로 던져 넘기는 것이다.
전통적 관례와 계례는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실질적으로 행하여지지 않았다. 진서턱을 내는 풍속 등도 제보자들의 윗세대에 전승되던 통과의례여서 근현대인에게는 전하여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5월 19일을 ‘성년의날’로 정하였으며, 만 20살이 되는 해의 성년의날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선물과 꽃다발 등으로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하여 주고 있지만, 실제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성년 의례보다는 혼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혼례와 수연례]
전체적으로 보면 혼례와 수연례는 정읍 지역만의 특징이나 관습이 있다기보다는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행하여졌다. 이를테면 정읍 지역에서 전통적인 혼례 과정은 유교적 절차인 의혼, 납채, 납폐, 친영의 주자사례(朱子四禮)에 따랐다. 다만, 유교적 방식을 엄격하게 따른 것은 아니고 상황에 맞게 절충하여 진행하였다. 6·25전쟁 직후 무렵부터 정읍 지역에 예식장이 생겼고 이때부터 신식 혼례와 전통 혼례가 섞여 행하여지다가 점차 신식 혼례로 바뀌었다. 자유연애에 개방적인 사회가 되면서 혼인은 중매혼보다 연애혼이 급증하였는데,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중매 반, 연애 반’이라 하였다. 근래에는 혼례는 서양식으로 하지만 예식 후 폐백은 전통 혼례 방식을 취한다.
수연례는 환갑이나 칠순, 팔순 등의 특정한 생일을 기념하여 잔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칠순은 아주 드물었고 환갑을 맞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환갑을 맞으면 축하 잔치를 크게 벌였다. 인간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오늘날 정읍 지역에서는 환갑은 예전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칠순이나 팔순은 되어야 장수한 것으로 생각하여 잔치를 한다. 수연례 때는 특별한 의례를 행하기보다 자녀와 자손들이 생일을 맞은 주인공에게 절하고,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긴다. 고령화 사회가 된 오늘날 수연례는 환갑잔치는 거의 하지 않고 칠순잔치 또는 팔순잔치가 중심이고, 잔치를 여행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흔하다. 효의 실천이나 장수의 기원이라는 의미는 살리면서 잔치보다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행사로 변화되는 추세이다.
[상장례]
정읍 지역의 상장례는 무속식, 유교식, 불교식, 기독교식 등의 유형이 있다. 최근까지 보편적 상례로 자리 잡은 유교식 상장례는 임종, 수시, 발상, 부고, 염습, 입관, 성복과 발인, 하관, 삼우제, 사십구재, 탈상 순서로 행하여진다. 상장례는 한번 관습이 되면 변화에 보수적이어서 유교식 상장례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교식 상례의 핵심인 삼년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개 삼일 만에 출상하고 그 밖의 많은 절차가 간소화되거나 서로 습합된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임종은 주로 자식이 지키는데 임종을 맞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자식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이야기한다. 정읍 지역에는 사람이 죽기 얼마 전에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인 혼불이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속신이 있다. 정읍 지역에서는 집에서 장례를 치른 사람 중에 혼불이 임종을 앞둔 사람의 집에서 빠져나가는 광경을 목격하였다는 사람들이 많다. 혼불은 작은 그릇만 한 크기로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데, 꼬리가 있는 모양은 남자의 혼불이고, 둥근 모양은 여자의 혼불이라고 한다. 혼불이 멀리 가서 떨어지면 임종을 맞은 이가 조금 더 살고, 가까이 떨어지면 일찍 죽는다고 여긴다.
정읍 지역에서는 방에서 관이 나올 때 관의 네 구석을 복숭아나무 가지로 세 번씩 치고 나오는데 이는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로 ‘주당맥이’라고 한다. 이처럼 유교적 방식의 상례 속에도 토착적이고 무속적인 방식이 혼재한다.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받은 이웃은 초상이 난 집에 가서 조문을 하고 일을 도왔다. 근래에 조문객은 상가에 돈을 가지고 가지만, 전통사회에서는 계란, 두부, 술 등으로 부조를 하였다. 정읍 지역 마을에서는 상례와 관련하여 위친계나 상포계 등이 조직되어 있었는데, 이 조직들은 초상집에 술이나 삼베를 사서 부조하거나 수의·상복·상여 등 상장례 물품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영원면 장재리에서는 ‘상여계’가 있어서 상여계원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상여를 직접 만들어 상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는 상장례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관여하여 공동체적 특성이 드러나는 의례였다면, 오늘날 상장례는 장례식장과 상업적 대행업체의 등장으로 업체 서비스를 받아서 개별적으로 치르는 의례가 되어 가고 있다.
[제례]
정읍 지역의 제례는 조상의 기일에는 기제사를 지내고, 5대조 이상의 조상을 함께 모시고 사당이나 묘에서 시제를 지냈으며, 설날과 추석에는 차례를 지냈다. 시제가 가장 큰 제사여서 시제에 정성을 많이 쏟았고, 삼신상과 성주상도 함께 차렸다. 기제사의 상을 차리기 전에 성주상을 차리는데 오래전에는 삼신상과 철륭상도 차렸다고 한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제사 방식은 생활의 편리를 고려하여 변하기 시작하였는데,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전통적 제례 방식이 지켜졌으나 1990년대가 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4대 봉사를 하던 기제사를 3대까지로 하거나 부모의 기제사를 한데 묶어서 지내는 경우도 늘고 있다. 기제사의 날짜나 시간도 종손들이 모이기 좋은 주말로 바꾸거나 초저녁에 지낸다든지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상례와 마찬가지로 제례 역시 전통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불교식이나 기독교식으로 진행되고, 전통적인 유교식 절차보다 대체로 간소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