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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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Naemok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Mogyok-ri |
이칭/별칭 | 마을 제사,2월 1일,화재막이,오릿대,짐대,뱅이,풍물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식 |
의례 장소 | 내목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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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 의례|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2월 1일 |
신당/신체 | 오릿대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목욕리 내목 오릿대 당산제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내목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음력 2월 1일에 우순풍조와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체 의례이다. 내목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오릿대를 세우고 지내는데, 오릿대는 소나무를 베어 짐대[장대]를 만들고, 소나무 가지로 오리 모양을 만들어 장대 맨 끝에 달아 세운 조형물이다. 오릿대는 오리가 물에서 사는 동물이므로 물로써 불을 진압하려는 주술적 믿음에 기반하여 화재 예방을 위한 화재맥이[화재막이]로서 세운 것이다.
[연원 및 변천]
목욕리 내목 오릿대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체인 오릿대는 모정(茅亭)이 있는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다. 오릿대는 한번 세우면 삭아서 넘어질 때까지 3~4년 정도 그대로 두는 까닭에 항상 네 기 정도가 함께 모여 있는데, 최근에는 진입로를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오릿대를 세울 구멍 세 개만 뚫어 놓았다. 오릿대는 산에서 장대처럼 긴 소나무를 베어 낫으로 껍질을 벗기고, 잔가지로 오리 조형물을 만들어 짐대 끝에 부착한다. 소나무를 선택할 때는 쭉 뻗은 나무보다 조금씩 휘어진 나무를 고른다. 소나무 짐대가 용을 상징하고, 굽은 나무라야 ‘용틀임하는 모양’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릿대 끝에는 흰 천에 쌀 세 홉[약 0.54ℓ]과 동전을 싼 복주머니를 매달아 놓는다.
[절차]
당산제를 지내는 아침에 남자 4~5명이 짐대로 적당한 소나무를 베러 뒷산에 오른다. 이때 참여자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 초상이나 출산 등 궂은 일이 없어야 한다. 짐대를 고를 때 오리 조형물을 만들 소나무 가지도 고른다. 짐대를 베어 오면 낫으로 껍질을 벗기고, 한쪽에서는 오리 형상을 만든다. 짐대와 오리 조형물이 완성되면 당산제 장소로 옮겨 세우는데, 오리를 부착한 짐대 끝에 쌀 세 홉과 동전을 넣은 복주머니를 매단다. 과거에는 아들이 없는 집에서 정성을 드리려고 복주머니를 매다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오릿대가 세워지면 여성들이 돼지머리 등 장만한 제물을 차리고 당산제를 지낸다. 이때 남성들은 풍물을 울린다. 당산제는 형식적 절차 없이 주민들 개개인이 부조금을 제삿상에 올리며 절과 함께 우순풍조와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부대 행사]
과거에는 오릿대를 세우고 나면 오릿대 옆에 디딜방아를 훔쳐 와서 거꾸로 세워 놓는 이른바 ‘뱅이’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뱅이는 디딜방아를 이용한 액막이 풍속인데, 마을의 디딜방아 방앗공이 세 개를 떼어 와 거꾸로 세우고 날개 끝에 3년상을 치르는 집의 상복을 걸어 두었다. 이러면 전염병이나 도둑, 횡액 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풍속은 해방되던 해 태풍으로 큰 바람이 불어 당산나무가 넘어진 뒤 단절되었다고 한다.
[현황]
목욕리 내목 오릿대 당산제는 과거에는 줄다리기를 병행한 뒤 용줄을 오릿대에 감아 놓고 제를 지냈다고 전하지만, 2023년 현재는 오릿대만 세운 뒤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