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정리 내동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74
한자 梅井里 內洞 堂山祭
영어공식명칭 Naedong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Maejeong-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내동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 지도보기
성격 민속 의례|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5~6일
신당/신체 당산나무|당집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에서 정월 초닷새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매정리 내동 당산제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 내동마을 주민들이 정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체 의례이다. 매정리 내동 당산제는 다른 마을의 당산제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모습은 보인다. 이를테면 제의를 지내는 날이 되면 당산제 과정의 하나로 볏짚을 모아 제웅인 ‘등신(等神)’을 만들고 이튿날인 파젯날에 ‘오색기와 가축몰이’를 행하며, 당산제 외에도 따로 ‘오방신제’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매정리 내동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주민들은 대체로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당산제를 시작하였을 것으로 여겨 최소 5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체는 당산나무와 당집이다. 각각 내동마을 중앙에 형성되어 있다. 수종이 괴목인 당산나무는 할머니당산이고, 당집은 할아버지당산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산나무를 마을 형성 초기에 심었을 것이니 수령이 500년은 될 것이라고 한다. 할머니당산 바로 옆에 있는 당집은 가로 250㎝, 세로 220㎝ 규모의 단칸집이다. 본래는 초가였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지붕은 함석으로, 벽체는 시멘트로 개수하였다고 한다. 상량문에 ‘광무 9년’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볼 때 1905년에 신축하였거나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당집 내부에는 선반을 질러 제기와 풍물 악기를 보관하고 있다.

[절차]

제의 준비는 정월 초부터 시작된다. 3일에는 주민들 가운데 깨끗한 사람으로 제주를 선정한다. 마을에서 부르는 명칭으로는 제주가 원화주이고 집사가 섭화주이다. 축관도 따로 선정한다. 3일에는 또한 제사 비용을 마련하는데, 모든 가구에서 가족 수대로 내는 인구전(人口錢)으로 걷는다. 4일에는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마을 입구 금줄부터 제주의 집까지 황토를 뿌려 연결한다. 4일에는 또한 제물 준비를 위하여 장을 보는데 궂은 사람의 돈이 섞일 것을 우려하여 깨끗한 돈으로 교환하고 장을 본다.

5일 당산제를 행하는 날에는 주민 모두가 비린 음식을 먹지 않는다. 오전에 남성들이 모여 오색기를 만든다. 오색기 숫자가 한때는 7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에는 각각 한자로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 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 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 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 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이라고 쓴다. 해가 지면 풍물굿을 시작으로 당산나무에 모여 볏짚으로 ‘등신’ 두 개를 만든다. 볏짚으로 만든 등신에 얼굴 형상까지 그리는데 각각 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를 인격화한 신체이다.

등신이 완성되면 마을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방죽 아래까지 가서 두 등신을 마치 합방하듯이 모셔 둔 채 돌아온다. 이어 자정 무렵에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제주, 축관, 집사만 모여 당집 내부에서 시행한다. 이때 당집 뒤쪽에 미역을 담은 물동우[물동이]를 비치하여 둔다. 과거에는 당산제가 끝난 뒤 물동이를 두고 소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아들 못 낳은 사람들이 서로 먼저 미역을 건져 가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당산제 절차는 강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순으로 유교적 절차를 따른다.

6일은 파젯날이자 ‘가축몰이’가 펼쳐지는 날이다. 6일 아침 주민들은 집에서 가축을 끌고 나온다. 주로 소와 염소이다. 마을이 컸을 때는 50~60마리씩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날 가축을 몰고 나오지 않으면 가축이 병들어 죽는다는 속설이 따른다. 가축을 몰고 나온 주민들은 가축과 오색기를 들고 다시 방죽으로 행진한다. 방죽에 당도하면 전날 모셔 놓은 등신을 소에 태우고 돌아와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이어서 등신을 다시 당집에 안치한다.

원화주와 섭화주는 다시 당집으로 들어가 제사를 지낸다. 이때의 특징은 당집 안에 ‘짐작하는 사람’이 동참한다는 점이다. 짐작하는 사람은 공수[무당에게 신(神)이 내려 신의 소리를 대신하는 일]를 내려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컨대 제사를 지내면서 원화주가 동네 소원을 풀어내면 짐작하는 사람이 등신 옆에 앉아서 “오! 다 짐작한다. 너그들 정성이 대단하니 다들 만수무강하고 농사도 잘되고 자식들도 잘되게 짐작한다”라고 공수를 내려 주는 식이다.

당산제 과정이 모두 끝나면 제사 음식 일부를 백지에 싸서 동네 오른쪽 150여 m 거리에 있는 ‘작은방죽’으로 가져가 돌 밑에 묻는 헌식을 한다. 헌식을 하면서 등신도 모시고 가서 눕혀 놓고 돌아온다. 이어서 온 동네 주민들에게 복떡을 돌리는 것으로 당산제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부대 행사]

마을에는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밤에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치고도 동네를 빠져나가지 못한 채 빙빙 돌기만 하다가, 결국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겨우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게 다 ‘당산님의 조화’라고 말한다.

[현황]

매정리 내동 당산제는 2022년도에 문화재청에서 공모한 ‘미래 무형 문화 유산 발굴·육성 사업’에 선정되거나 대학교의 민속학 연구 대상으로 연구서가 출간되는 등 다양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제웅, 소몰이, 오방신, 공수 등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매정리 내동 당산제만의 독특한 특징이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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