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리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90
한자 六里 堂山祭
영어공식명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Yuk-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육리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육리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 지도보기
성격 민속 의례|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3일
신당/신체 당산집|화상[당산할아버지|당산할머니]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에서 정월 초사흗날에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육리 당산제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의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지내던 마을 공동체 의례이다. 일반적으로 정읍 지역 당산제는 정월에 지내는 경우에는 남성이, 음력 2월에 지내는 경우에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데, 음력 2월에 지내는 육리 당산제도 남성 중심의 당산제이다. 정월 초사흗날 밤에 기제사 형식으로 지내어 오다가 2002년 무렵에 전승이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육리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마을의 규모가 작아지고 마을 구성원들이 고령화되면서 제를 이어 갈 주체가 없어지자 2002년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육리 당산제의 신체는 당산집에 화상으로 걸린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이다. 원래 있던 화상은 실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묘사가 뛰어나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산제가 중단되기 30여 년 전에 한 기독교인이 화상을 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 뒤로 마을의 한 유지가 어느 사찰에 의뢰하여 화상을 다시 그렸으나 원래의 화상에 비하면 몹시 형편없는 졸작이었고 이마저도 유실된 상태이다.

마을 당산신이 깃드는 신당은 ‘당산집‘이라고 불리는 당집이다. 당산집은 육리마을 뒤편으로 약 30m 떨어진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전면 380㎝, 측면 320㎝ 규모의 두 칸 구조 건물이며, 지붕은 본래 기와인데 함석으로 보수하였다. 오른쪽 방이 당산신을 모신 제당이고 왼쪽 방은 제물을 조리하는 공간으로 아궁이가 딸려 있다. 과거에는 당산집 주변의 나뭇가지만 꺾어도 동티가 날 정도로 영험하였다고 하는데, 당산제가 단절되면서 당산집도 퇴락하여 구조물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절차]

육리 당산제는 음력 1월 3일에 수행한다. 제주는 축관까지 3명이며 섣달그믐날 깨끗한 사람 중에서 선정한다. 때로는 아들이 없거나 특별한 소원이 있는 사람들이 자청하기도 한다. 섣달그믐날이 되면 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당집을 청소하고 황토를 군데군데 뿌린다. 제물 장만에 쓰일 우물도 청소하고 멍석으로 봉하여 놓는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동네 출입구 네 곳에 각각 금줄을 친다. 제주는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하면서 당산집에 촛불을 밝히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비린 음식도 일절 먹지 않아야 한다. 당산제의 비용을 집마다 걷어, 정월 초이튿날 장을 보고 당산집에서 남자들이 제물을 조리한다. 육리마을에는 과거부터 장을 보아 온 품목과 가격에 대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정월 초사흗날에는 주민들도 비린 음식을 절대 먹지 않으며, 밥을 김에 싸 먹거나 간장으로만 먹는다. 이날 밤 11시 무렵에 당산제를 지낸다. 저녁 식사 후 제주들이 먼저 당으로 오르고, 나중에 남자들로만 구성된 풍물패가 당에 오른다. 당산제 순차는 기제사와 같다. 다만 마지막에 각 세대주를 호명하며 소지하고 축원한다. 소지가 끝나면 징을 쳐 당산제가 끝났음을 마을에 알리고 음복하고 나서 돌아온다.

이튿날은 파젯날이다. 이날은 제주들이 밥을 김이나 백지에 싸서 각 가구마다 식구 수대로 전달한다. 이 밥을 먹고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날 마을 총회를 열어 결산도 하고 제물로 뒤풀이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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