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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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팽매바위와 치마바위」 『정읍의 전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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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9월 25일 - 「팽매바위와 치마바위」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
관련 지명 | 굴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
채록지 | 수청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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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암석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천하장사|힘센 여인 |
모티프 유형 | 암석 유래담|힘겨루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에서 팽매바위와 치마바위에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팽매바위와 치마바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에서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로 가는 고개인 굴재로 넘어가는 길가에 나란히 서 있는 부부 바위에 관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팽매바위는 굴재 동남쪽에, 치마바위는 팽매바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팽매바위와 치마바위」는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옛날 정읍시 칠보면에 이름난 힘센 장사들이 여러 명 살고 있었는데, 저마다 자기의 힘이 제일 세다고 자랑하였다. 장사들은 자신들의 힘을 자부하며 힘겨루기를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칠보산(七寶山) 용추봉에 모여 힘겨루기를 하였다. 경기 방법은 큰 바위를 들어 무릎 위까지 올렸다가 내려놓는 것이었는데, 워낙 무거워서 모두 포기하였고 바위를 들 수 있는 사람은 겨우 세 사람이었다. 최종 결승전을 펼치는 방법은 바위를 키 높이로 들어서 멀리 던지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은 각각 무릎 위, 가슴 위까지 바위를 올리다가 그대로 바위를 놓고 말았다. 세 번째 사람은 양손 새끼손가락으로 큰 바위를 들어 하늘 높이 쏘아 버렸다. 바위가 한참을 날아가 굴재에 떨어졌는데, 마치 조약돌을 쏘는 듯하였다. 세 번째 장사가 던진 바위를 사람들은 ‘팽매바위’라고 불렀다. 웅장하고 큰 바위인데, 위쪽 부분이 두루뭉실하고 아랫부분이 작아 남자 성기를 상징하는 바위로 알려졌다.
어느 날 근방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한 여인이 굴재를 지나가게 되었다. 여인이 팽매바위를 지나다 보니 남자가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여인은 골짜기로 내려가 큰 바위 하나를 물에 씻어 바위 위에 자기 치마를 벗어 덮고는 불끈 들어서 높이 쏘았다. 바위는 팽매바위 뒤에 떨어져 신부처럼 다소곳이 서 있게 되었는데, 모습이 여인의 치마를 닮았다 하여 ‘치마바위’라고 불렀다. 뜻밖에 아내를 맞이한 팽매바위는 물론이고 골짜기에서 혼자 물만 계속 마시다가 남편을 만난 치마바위 역시 좋아하였다.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팽매바위와 치마바위는 비바람 속에서도 금실을 자랑하며 다정하게 서 있다. 사람들은 부부 바위에 무병장수를 빌기도 하고, 임신을 못 하는 여인은 찾아와 소원을 빌면 효험이 대단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굴재의 보를 막게 되면서 부부 바위도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팽매바위와 치마바위」는 암석 유래담이자, 팽매바위와 치마바위의 영험함을 강조한 이야기이다. 암석 유래담은 전국에 광포되어 있지만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에 있는 팽매바위와 치마바위는 부부 바위로 형상화되면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팽매바위는 남자들 중에서 가장 힘센 천하장사가 던진 큰 바위이며, 치마바위는 여자 중에서 가장 힘센 여인이 던진 바위인데, 굴재는 두 바위가 자리를 잡아 부부 바위가 된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남녀 바위가 만났으니 영험함도 대단할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칠보면 수청리 굴재는 생산력과 생신력도 풍부한 곳일 것이라는 지역적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