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타는 냄새가 십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15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과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빈대 타는 냄새가 십리」 『정읍의 전설』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9월 25일 - 「빈대 타는 냄새가 십리」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관련 지명 이주암골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 279 지도보기
성격 설화|사찰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주지|행자
모티프 유형 사찰 전설|빈대 이야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과교동에서 빈대 타는 냄새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빈대 타는 냄새가 십리」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과교동 서당촌에서 10리[약 3.93㎞] 정도 떨어진 이주암골[의주암골]에 있던 용문암(龍門菴)의 절터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주암골에 산수 경관이 뛰어난 빈터가 있었다. 바로 용문암 절터이다. 용문암 절터는 큰 절터와 작은 절터가 가까이 인접하여 있는데, 두 절터 중간에 큰 송곳바위가 있다. 하늘을 찌르는 듯 서 있는 송곳바위 밑에는 벌통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거기에 벌통을 갖다 놓으면 벌을 몇 통씩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빈대 타는 냄새가 십리」는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옛날 용문암에는 빈대가 많아 승려들이 밤에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옷 속의 빈대를 털어 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용문암에서는 여러 명의 승려들이 수도를 닦고 있었는데, 특히 주지는 인격이 고결하고 학덕이 높은 고승이었다. 주지는 용문암에 머무는 여러 승려들과 불자들에게 빈대도 생명이니 빈대를 잡기는 잡되 절대 죽이지는 말라고 당부하였다. 수도승이 살생을 하여서는 안 되고 빈대를 참고 견디는 것이 중이 겪어야 할 자비인욕(慈悲忍辱)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승려들은 빈대를 죽이지 못하고 매번 잡아 모아서 절 문밖에 버리고 돌아왔다. 날마다 빈대를 쓸어 모아 버렸지만 빈대는 줄지 않았고, 더욱 극성을 부려 절이 빈대 천지가 되었다. 어느 곳에서나 빈대가 나왔고, 심지어 음식에서도 죽은 빈대가 나오기 일쑤였다.

용문암에는 절에 온 지 1년이 안 된 나이 어린 행자 한 명이 있었다. 행자는 빈대의 성화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밤이나 낮이나 빈대를 없앨 방법을 고민하다가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니 빈대에게 시달리고 피를 빨려서 뼈만 앙상하였다. 어느 날 큰절 송광사(松廣寺)에서 행사가 있었다. 용문암의 승려들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모두 떠나고 행자 혼자서 용문암을 지키게 되었다. 용문암을 떠나는 승려들의 뒷모습을 보며 행자는 승려들 속옷에 붙은 빈대들이 큰절에도 옮겨 가 송광사도 곧 빈대 천지가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처 앞에 엎드려 승려들과 불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빈대를 모두 잡아 죽이기로 결심하였음을 고하며 용서를 빌었다. 행자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법당으로 들어가 빈대를 잡기 위하여 마른나무를 가져와 불을 붙였다. 용문암은 순식간에 모두 불탔는데, 용문암이 탈 때 빈대 타는 냄새가 10리까지 퍼졌다고 한다. 행자는 용문암을 태운 죄의식으로 환속하여 참회하며 한 생애를 보냈다. 그 뒤 용문암은 다시 지어지지 않았고 절터만 남아 있다. 용문암 절터에 가면 돌과 기왓장에 빈대 껍질이 붙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빈대 타는 냄새가 십리」는 용문암 사찰 설화이다. 용문암이 절터만 남아 있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을 것이고, 빈대로 인하여 절이 불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용문암이 탈 때 빈대 타는 냄새가 10리 밖까지 났다고 하는 이야기와 절터만 남아 있는 곳의 기왓장에 빈대 껍질이 아직 붙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첨부하여 빈대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빈대’의 웃음 코드를 확장하여 흥미성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빈대 때문에 괴로운 민중들의 심리가 유머스럽게 이야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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