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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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각시다리」 『정읍의 전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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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9월 25일 - 「각시다리」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
관련 지명 | 각시다리터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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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지명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신랑|신부|가마꾼 |
모티프 유형 | 각시다리와 씨교동 유래담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에 있던 각시다리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각시다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에 있는 각시다리 터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각시다리는 정읍시 장명동 정읍동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약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990년 복개 공사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각시다리」는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정읍현아(井邑縣衙)로 들어오는 관문 자리에 다리가 하나 있었다. 옛날에는 통나무 몇 개를 묶어 놓은 다리라서 가마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넓이였다. 조선 시대에 일이난 일이다. 하루는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가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중간에 이르렀을 때 반대 방향에서 오는 다른 신부 가마가 있었다. 각기 신부를 태운 두 가마는 다리 한가운데에서 서로 먼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먼저 다리를 건너는 신부가 복을 받아 건강하게 아들딸을 낳고 잘 산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서로 먼저 건너려고 가마꾼들끼리 서로 밀어부치다가 한쪽 가마의 신부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신부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신랑은 큰 슬픔에 휩싸였다. 신랑은 몇 년이 흐른 후 다른 처녀에게 장가를 들어 잘 살았지만, 물에 빠져 죽은 신부를 잊을 수 없어 신부가 죽은 날이 돌아오면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하여 다리 이름을 ‘씨교(氏橋)‘, 즉 ‘각시다리’라고 불렀다. 각시다리가 있는 마을은 ‘씨교동(氏橋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각시다리」는 정읍시 장명동에 있던 각시다리와 각시다리가 있었던 마을 이름의 유래가 담긴 설화이다. 가장 아리따워야 하는 시집가는 날에 신부가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 다리는 사람들에게 각시다리로 각인되어 회자되고, 각시다리가 있던 마을이 씨교동이 되었다는 이름 유래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