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씨촌의 정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22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은씨촌의 정문」 『정읍의 전설』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9월 25일 - 「은씨촌의 정문」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관련 지명 정문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지도보기
성격 설화|열녀 전설
주요 등장 인물 김 서방|부인 이씨|은 참봉
모티프 유형 열녀 화소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은씨 집성촌의 정문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은씨촌의 정문」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은씨(殷氏) 집성촌 건너 산기슭에 세워진 정문(旌門)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열녀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은씨촌의 정문」은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옛날 담양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외아들 금동이[김 서방]와 역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외동딸 갑순이[이씨]가 살았다. 어머니들도 사이가 좋았고, 금동이와 갑순이도 서로를 사랑하여 나이가 차자 혼인을 올렸다. 혼인 후에 사람들은 금동이를 ‘김 서방’이라고 부르고, 갑순이를 ‘이씨’라고 불렀다. 부부의 정은 말할 수 없이 깊었는데, 혼인한 지 3년째 되는 때부터 김 서방이 폐병을 앓았다. 부인 이씨의 정성에도 백약이 무효하였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자 부인 이씨는 먹고 살기 위하여 도부(到付)를 하며 떠돌게 되었다. 여러 고을을 떠돌다가 정읍 고부읍[현 정읍시 고부면]에 이르러 은 참봉 집으로 밥을 얻으러 갔다. 그런데 은 참봉이 부인 이씨더러 자신의 후실로 들어와 아들을 낳아 주면 이씨의 남편까지 따뜻하게 보살펴 주며 좋은 약도 써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부인 이씨는 남편의 안정적인 치료를 위하여 결국 은 참봉의 후실로 들어가 아들 3형제를 낳았다.

그러나 이씨는 김 서방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식지 않았다. 여전히 김 서방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새벽에는 항상 김 서방이 있는 별당채로 찾아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을 무렵 김 서방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김 서방의 상을 치른 후에 남편을 따라 죽었다. 그리고 유서에 자신을 남편 김 서방과 한 무덤에 묻어 주고, 아들 셋 중의 하나는 김 서방의 대를 잇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은 참봉은 이씨의 유언대로 둘을 한 무덤에 묻어 주고 아들 하나로 하여금 김 서방의 대를 잇게 하였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관가에서는 이씨를 열녀로 표창하고 무덤 앞에 정문을 세워 주었다.

[모티프 분석]

「은씨촌의 정문」은 ‘열녀’ 화소를 차용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정려 표창을 받은 이씨는 남편이 있는 몸이었으나 은 참봉의 후실로 들어가 아들을 세 명이나 낳았다.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쉽게 버리는 ‘열녀’ 공식에 따르면, 이씨의 이야기는 열녀와는 정반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씨가 은 참봉의 후실로 들어간 이유는 모두 남편 김 서방을 위한 것이었다. 아픈 김 서방을 잘 돌보고 김 서방의 대를 이어 주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김 서방이 죽자 이씨는 스스로 자결하여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켰으며, 김 서방의 후사를 잇게 하여 김 서방의 정체성을 확보하여 주기까지 하였다. 단순히 정절을 지키거나 남편을 따라서 죽는 순절 열녀의 일반 공식을 뛰어넘는 고부 지역의 독자적 열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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