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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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세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숫골의 장군바위」 『정읍의 전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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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9월 25일 - 「숫골의 장군바위」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
관련 지명 | 숫골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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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장군 |
모티프 유형 | 암석 유래담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에서 장군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숫골의 장군바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 주동마을에 있는 장군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암석 유래담이다. 주천리 주동마을은 예전에 숫골이라고 불렸는데, 숫골 남쪽 산기슭에 승전한 장군이 쉬다 간 장군바위가 있었다고 전한다.
[채록/수집 상황]
「숫골의 장군바위」는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에 있는 주동마을을 ‘숫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숫골 남쪽 산기슭에 있는 바위가 장군바위다. 먼 옛날에 싸움터에서 돌아오던 한 장군이 있었는데, 7월이라 날씨가 불볕더위였다. 땀을 많이 흘린 장군은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좌우로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널찍한 바위도 있으며, 아래쪽으로 맑은 연못까지 있어 쉬어 가기에 알맞은 곳이 보였다. 달리던 말에서 내린 장군은 시원한 물에 뛰어들어 전쟁과 더위에 지친 몸을 씻으며 오랫동안 목욕을 하였다. 그런 뒤에 물에서 나와 옷을 벗은 채 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승전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지만 오랜 전쟁에 시달려 몸은 너무도 지쳐 있었으므로 장군은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 보니 이미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장군은 바위에 누운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전쟁에서 이긴 승리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이렇게 편안하게 쉰 것이 대체 얼마 만의 일인가. 여기에 내가 편히 쉬어 간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몸을 일으켜 바위 위에서 일어났다. 바위에는 장군이 누워 있던 모습이 그대로 깊이 패여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실현된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장군은 고향으로 금의환향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장군이 누워 있던 바위를 ‘장군바위’라고 불렀다. 가로 130㎝, 세로 340㎝, 두께 70㎝인 장군바위는 장군이 누워 있던 대로 머리, 팔, 어깨, 등, 갈비뼈, 궁둥이, 두 다리, 심지어 성기와 고환까지 모두 입체적으로 움푹 패어 있다. 지금도 정읍시에서 고창군으로 통하는 큰 도로에 장군바위는 논두렁과 산을 가르듯 말없이 누워 있다. 장군바위는 검은 색깔의 바위인데,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오랜 역사를 말하여 주고 있다. 바로 밑에는 장군이 목욕을 하였다는 곳이 지금은 가로 1.5m, 세로 10m의 조그마한 연못으로 변하여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보통 ‘장군바위 전설’은 아기장수 모티프를 공유하고 있다. 광포 설화로 전하여지는 암석 유래담은 바위의 모양이 장군 형상이라거나, 장군이 타던 말발굽 자국이나 장군의 발자국이 남았다는 족적암 모티프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숫골의 장군바위」는 신체의 자세한 부분까지 판화처럼 선명히 찍혔다고 묘사하고 있는 매우 희소한 암석 유래담이다. 바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바위에 장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존하여 기리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영웅이 다시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