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질소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53
이칭/별칭 「배꽃타령」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6년 2월 11일 - 「장원질소리」 김복기, 김영석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9년 - 「장원질소리」 『전북의 민요』에 수록
채록 시기/일시 1991년 2월 21일 - 「장원질소리」 김복기 외 마을 주민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장원질소리」 『한국민요대전』 전라북도 민요 해설집에 수록
채록지 삼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삼리지도보기
가창권역 정읍시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성격 유희요
형식 구분 선후창
가창자/시연자 김복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농민들이 논매기를 끝낸 후 마을로 행군하면서 부르던 유희요.

[개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전승되는 「장원질소리」는 논매기를 끝낸 농민들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정읍시에서는 논매기를 네 번 하였는데 마지막인 네 번째 논매기를 마친 후 농사가 가장 잘된 집의 일꾼을 농사 장원으로 선발하여 사다리나 소에 태우고 풍물을 치며 마을로 행군하면서 「장원질소리」를 불렀다. “배꽃일레”라는 사설로 시작하여 「배꽃타령」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사당패의 길소리 중 하나인 「배꽃타령」이 전라도 지역에서 토착 농요로 변형되어 수용된 노래로 여겨진다.

[채록/수집 상황]

「장원질소리」는 1986년 2월 11일 김익두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삼리마을에서 마을 주민 김복기[남, 67세]와 김영석[남, 68세]에게 채록하였고, 전북애향운동본부가 1989년에 간행한 『전북의 민요』에 노랫말이 수록되었다. 이후 1991년 2월 21일 김익두 외 MBC문화방송 민요 조사단이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삼리마을에서 김복기와 마을 주민들에게 다시 채록하여 1995년 1월 1일 MBC문화방송에서 발행한 『한국민요대전』 전라북도 민요 해설집과 CD에 수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장원질소리」는 앞소리꾼 한 사람이 소리를 메기면 일꾼들이 “얼씨구나 야야 절씨구나 야야 얼싸 절싸 좀이나 좋던가 보더라 흥그러 당실 절씨구”라는 후렴 소리로 받는 선후창 방식으로 부른다.

[내용]

[앞소리] 배꽃일레 배꽃일레 정실로 배나무야 정실로 배나무야 아그밴가 독밴가 배꽃일레 배꽃일레

[뒷소리] 얼씨구나 야야 절씨구나 야야 얼싸 절싸 좀이나 좋던가 보더라 흥그러 당실 절씨구

[앞소리] 연꽃일레 연꽃일레 방죽으나 주아미 방죽으나 주아미 방죽으나 방죽으나 연꽃일레 연꽃일레

[뒷소리] 얼씨구나 야야 절씨구나 야야 얼싸 절싸 좀이나 좋던가 보더라 흥그러 당실 절씨구

[앞소리] 말 잘 탄다 말 잘 탄다 북도(北道)라 마병들이 북도라 마병들이 마병 녀석들이 말 잘 탄다 말 잘 탄다

[뒷소리] 얼씨구나 야야 절씨구나 야야 얼싸 절싸 좀이나 좋던가 보더라 흥그러 당실 절씨구

[앞소리] 활 잘 쏘네 활 잘 쏜다 전주라 한량들이 전주라 한량들이 한량 양반들이 활 잘 쏘네 활 잘 쏘네

[뒷소리] 얼씨구나 야야 절씨구나 야야 얼싸 절싸 좀이나 좋던가 보더라 흥그러 당실 절씨구

[앞소리] 연 잘 띄네 연 잘 띄네 서울이라 무학자들 서울이라 무학자들 연 잘 띄네 연 잘 띈다

[뒷소리] 얼씨구나 야야 절씨구나 야야 얼싸 절싸 좀이나 좋던가 보더라 흥그러 당실 절씨구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김매기는 한여름 땡볕에서 서너 차례에 걸쳐 행하는 고단한 노동이다. 마지막 논매기가 끝나면 가을 추수까지 힘들고 바쁜 농사일도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생긴다. 마지막 논매기를 정읍 지역에서는 ‘만두레’라고 하였는다. 만두레를 끝내고 나서 농부들은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일꾼을 뽑아서 사다리나 소에 태운 뒤, 과거에 장원한 사람처럼 꾸미고 풍물을 치며 마을로 행군하여 들어온다. 이때 신명을 돋우기 위하여 불렀던 민요가 「장원질소리」이다. 마을로 돌아오면 장원으로 뽑힌 일꾼의 집주인이 대접하는 술과 음식을 먹고 놀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농사 장원을 뽑고 집 주인이 내는 술과 음식을 먹고 노는 풍습을 ‘장원례(壯元禮)’라고 한다.

[현황]

「장원질소리」는 농사 환경의 변화와 가창자 세대의 단절로 농촌 현장에서 더 이상 전승은 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농부들은 여름철 몇 차례의 고된 김매기 노동을 끝내고 나서 ‘장원례’라는 위로와 해방의 축제에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장원질소리」는 일과 놀이가 함께 어우러진 정읍 지역의 전통 사회 농민 문화의 한 모습을 보여 주는 유희요라 할 수 있다. 「장원질소리」를 부를 때 풍장[풍물]도 함께 치므로 「풍장소리」로서 의미도 있다. 노래에 수반되는 풍장은 흥겨운 길놀이와 잔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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