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노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63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3년 4월 9일 - 「시집살이 노래」 최복례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4년 4월 17일 - 「시집살이 노래」 이금녀, 이정희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5년 4월 28일 - 「시집살이 노래」 박귀녀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5년 5월 12일 - 「시집살이 노래」 송옥표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7년 4월 30일 - 「시집살이 노래」 『한국구비문학대계』 5-6,·5-7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9년 - 「시집살이 노래」 『전북의 민요』에 수록
채록 시기/일시 1991년 2월 21일 - 「시집살이 노래」 김봉애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시집살이 노래」 『한국민요대전』 전라북도 민요 해설집에 수록
채록지 탑성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복흥리 탑성지도보기
채록지 삼리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지도보기
채록지 이문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이문지도보기
채록지 탑립마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탑립마을지도보기
가창권역 정읍시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성격 민요
형식 구분 독창
박자 구조 4음보 율격
가창자/시연자 최복례|이금녀|박귀녀|송옥표|김봉애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부녀자들이 시집살이의 애환을 표현한 민요.

[개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전승되는 「시집살이 노래」는 혼인한 여성이 시집에서 남편, 시부모, 시누이 등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다양한 갈등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시집 식구들의 부당한 대우와 모함에 억울함을 항변하거나 저항하는 며느리들이 화자로 등장한다. 「시집살이 노래」는 전통 사회에서 고달픈 시집살이를 겪었던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된 시집살이 경험을 기반으로 향유와 전승이 이루어졌다.

[채록/수집 상황]

「시집살이 노래」는 1983년 4월 9일 김익두가 정읍시 북면 복흥리 탑성마을에 현지 조사를 나가 마을 주민 최복례[여, 74세]에게 채록하였고, 김익두가 집필하고 전북애향운동본부가 1989년에 간행한 『전북의 민요』에 수록하였다. 1984년 4월 17일 박순호, 김윤석, 김선례가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삼리마을에서 마을 주민 이금녀[여, 70세]와 이정희[여, 57세]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는 1987년 4월 3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5-7 전라북도 정주시·정읍군 편에 각각 수록되었다.

1985년 4월 28일 박순호, 박현국이 정읍시 북면 남산리 이문마을에서 박귀녀[여, 56세]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는 1987년 4월 3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한국구비문학대계』5-7 전라북도 정주시·정읍군 편에 수록되었다. 또 1985년 5월 12일 박순호, 박현국이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탑립마을에서 송옥표[여, 79세]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는 1987년 4월 3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5-6 전라북도 정주시·정읍군 편에 실려 있다.

1991년 2월 21일 김익두 외 MBC문화방송 민요 조사단이 정읍시 북면 복흥리 탑성마을에서 마을 주민 김봉애[여, 55세]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는 MBC문화방송이 1995년 1월 1일 CD 음원과 함께 발행한 『한국민요대전』 전라북도 민요 해설집에 수록되었다.

[구성 및 형식]

「시집살이 노래」는 보통 4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고, 후렴구 없는 통절 형식이다. 길쌈이나 바느질, 밭매기와 같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노동을 하면서 읊조리는 식으로 혼자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내용]

정읍시에서 전승되는 「시집살이 노래」 가사를 보면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논일을 시키고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까지 시키는 시아버지, 실수로 그릇을 깬 며느리에게 친정 세간을 팔아서라도 그릇 값을 물어내라는 시집 식구의 억지가 그려지고 있다. 첩을 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서글픔이 담긴 가사도 전한다.

1. 북면 복흥리 탑성마을 최복례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배명땅에 치내선씨 딸만 성지[형제] 길렀더니/ 물만 보고 여욋던가 밥만 보고 여욋던가/ 시집간 샘일 만에 모를 허러 가자시데/ 모시께끼 청초치매 물명주 단오에다/ 몸으 곱게 졸라매고 순금대단 접저구리/ 보기 좋게 잘라 입고 다루닷단 다 따 연져/ 머리 고개 곱게 허고 모를 허러 가서 보니/ 웃논에는 별감 앉고 아랫손에 좌수 앉어/ 별감좌수 앉진 들에 선소리를 마치라네/ 시금시금 시아버니 군자씨로 여겼더니/ 불사 쌍놈이 자네로세 거덩거덩 집이를 와서/ 네 구석을 굽어보니 물명주 반포수건 횃대 뿔에 걸렸구야/ 그놈으로 목을 잘라 죽자헌들 어느 뉘가 알어주리/ 대양판에 밥을 푸고 쇠양판에 국을 퍼서/ 열두 반산 채려 주고 나는 갑니다”

시집간 지 사흘 만에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모심으러 나오라고 하자 며느리가 곱게 차려입고 들로 나갔더니 별감, 좌수 앞에서 소리를 메기라 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군자인 줄 알았더니 쌍놈이라며 집으로 돌아와서 목 매달아 죽을까 하지만 그렇게 죽으면 누가 알아줄까 하여 마음을 고쳐먹고는 밥을 차려 놓고 집을 나간다는 내용이다.

2. 칠보면 시산리 삼리마을 이금녀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깨를 볶고 그릇을 깼드니 시어머니가 쏙 나서서/ 아가아가 늬기 집이 건네가서 늬기 집이 보십이 좋다더니/ 고놈 팔어 양해양단 사오니라 시아버니 쏙 나서서/ 아가아가 늬기 집이 건네가서 늬기 집이 보십이 좋다더니/ 고놈 팔어 양해양단 물어오니라/ 근게 또 시누이가 나서서 성님성님 성님네 집이 가서/ 성님네 집이 뭔 보십이 좋다고 고놈 팔아서 양해양단 물어오시오/ 그러고 근게 또 서방님이 그러드리야/ 자그 집이 가서 가 그놈 팔어서 양해양단 물어오라곤게로/ 날 새 큰애기로 새신랑으로 맨들어노먼 내가 가서 물어오겄단게/ 그즉이는 아가아가 고만두고 살자 그리고 잘살었대요”

며느리가 깨를 볶다가 실수로 그릇을 깨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친정 보습을 팔아다가 물어내라 한다. 시누이와 남편까지 가세하자 며느리는 나를 혼인 전 큰애기로 만들어 주면 그 즉시 물어 오겠다고 하자 남편과 시집 식구들은 그만두고 살자 하면서 굴복한다는 내용이다. 부당한 시집살이에 대한 며느리의 항변과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3. 칠보면 시산리 삼리마을 이정희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형님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되다더니 늦잠 자고 누웠어요/ 시살동천 해 비쳤다 연지화야 잠들었냐/ 시집살이 되다더니 늦잠 자고 누웠느냐/ 어지나적 식은 밥은 찬물에다 몰아주디/ 오- 나적 식은 밥은 된장국에 몰아주디/ 세상사도 나는 싫고 칠성판이나 뚝 떠받고/ 북망산천이나 나는 갈라네/ 우어 자네가 밤에와 낮에와도 범난고랑/ 우어 자네가 밤에와 급사랑을 품에 품고/ 무선 줄도 내 몰랐네 에- 자네가 밤에와/ 이 재 너머에 또재 너머 저배년이 있다걸래/ 빼꼬칼을 품에 옇고 죽이자고 가겠더니/ 구름 같은 애편머리 반달같이 집어얹고/ 빵그작작 웃는 것이 해모동실 꽃일레라/ 여자 눈에 저리 뵐제 남자 눈에 오직할까/ 세상사도 싹 시러 울고 너와 나와 싫다 하고/ 너 가서 잘 살아라 이별하고 나는 간다”

충분히 잠도 자지 못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은 며느리는 고된 시집살이로 죽고 싶은 심정인데, 남편은 재 너머에 첩을 두고 있다. 첩을 죽이려고 칼을 품고 찾아갔으나 오히려 웃으며 맞이하는 첩은 같은 여자 눈으로 보기에도 어여쁘다. 그런 여자에게 가서 잘 살라 하고 며느리는 떠난다는 내용이다.

4. 북면 남산리 이문마을 박귀녀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시집와서 시집살이 헐 적으는/ 나도 부모 자식으로 귀헌 자식이 되얐는디/ 시집을 와서 보니 밥을 히먹을 종도 모르고/ 물도 지릴 종도 모른디 물 한 동우 질다가/ 동우를 한번 파싹 깨끈게로/ 저드제까 동을 사오니라 내 깃가엔 다 망헌다/ 들로 가며는 아당보라고 집이로 들먼 시누방구/ 군자 같은 낭군은 등 돌아서 누웠는디/ 눈물은 받으면 칠산바대라도 내어/ 배라도 띠우건마는 돗때 없어 배도 갈 낄 없고/ 이 눈물은 띄어서 어머님전에 바처볼까/ 이 눈물은 피가 되고 강이 되니 어느 누가 알아줄까/ 한 품에 자는 낭군도 몰라주고 그 성난을 제끼고 본게로/ 오날은 아들 사형제 딸 샘형제 만고호질이로다”

며느리도 시집오기 전에는 부모님의 귀한 자식이었는데, 시집을 와서 밥을 하려고 물을 길어 오다 동이를 깨뜨렸더니 시집 식구들이 친정 세간을 팔아서라도 물어오라 한다. 가창자는 남편도 몰라주는 설움에 눈물을 많이 흘렸으나 아들딸을 잘 키워 놓아 보람을 느낀다는 개인의 소회를 읊는다.

5. 영원면 은선리 탑립마을 송옥표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시집살이 말도 많고 고금살이 일도 많네/ 시집가는 사흘 만에 시금시금 시아바니/ 간지설때 손에 들고 살굿대로 가로 짚고/ 아강아강 매눌아강 모를 심구고 가자 허네/ 가자머는 가지요 생기라먼 생기지요/ 따름따름 따르간 게 이 논 저 논 다 내버리고/ 서른두 명 미는 논이 지심을 미라고 들어가네/ 할 수 없이 들어가서 미는 손 허니란게/ 시금시금 시아바니 논두럭으 서서 허는 말이/ 아강아강 며눌아가 노래나 한 자리 불러 봐라/ 시금시금 시아바니/ 논두럭으 서니 노래허라고 허신 행장은 개상놈의 행사로다/ 아가아가 어서 나와/ 아랫물에 손을 씻고 웃물이 손을 씻고”

시집간 지 사흘 만에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모를 심으러 가자 하여 따라나섰더니, 며느리를 많은 사람들이 있는 논에 들어가게 하고는 논두렁에서 노래를 시킨다. 노래 속 화자는 며느리에게 논두렁에서 노래를 시키는 것은 상놈의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6. 북면 복흥리 탑성마을 김봉애에게 채록한 「시집살이 노래」

“성님 성님 사춘 성님/ 시집살이 어쩌든가/ 야야 야야 말도 마라/ 명지치매[명주치마] 갈보치매[갈포치마]/ 살강발이[부엌 선반] 걸어 놓고/ 옴서 감선 눈물 딲기 다 녹았다/ 떡가리냐 분가리냐/ 돈 잘 씽개 한럥이지/ 돈 못 씽개 한럥이냐”

사촌 형님에게 시집살이가 어떤지 물었더니, 사촌 형님이 살강 끝에 걸어 놓은 명주치마가 오며 가며 닦은 눈물에 다 녹았다고 한다. 시집살이의 설움을 표현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시집살이 노래」는 신부가 친정을 떠나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 시집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은 한 남자의 아내 역할보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각종 책무와 노동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순종을 강요당하며 각종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현황]

「시집살이 노래」는 시집살이의 고단함과 서러움에 공감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향유와 전승이 이루어져 전국적 분포를 보인다. 「시집살이 노래」의 주요 가창자들은 70~80대 여성들이다. 대개 길쌈 노동을 하면서 가창하였는데, 오늘날에는 길쌈 노동을 개별적으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창자들의 기억력도 약화되어 사설을 다 기억하지 못하거나 원곡이 훼손되면서 노래 전승도 단절되어 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통제되던 가부장제 사회에서 「시집살이 노래」는 시집간 여성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말하기 욕망을 충족시키고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이었다. 「시집살이 노래」에는 과중한 노동으로 인한 고단함, 시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서러움, 방관하거나 가세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 친정에 대한 그리움 등 유교적·봉건적·폐쇄적인 사회에서 기혼 여성이 겪었던 다양한 문제들이 갈무리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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