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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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陽遺稿 |
이칭/별칭 | 종양선생문집(宗陽先生文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미 |
간행 시기/일시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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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종양유고』 영인본 간행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60-1] |
소장처 | 전북대학교 도서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금암동 663] |
간행처 | 경인문화사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445-1[문발동 638-4] |
성격 | 고도서|문집 |
저자 | 최민열 |
간행자 | 최규홍 |
권책 | 2권 |
행자 | 12행 28자 |
규격 | 23㎝ |
어미 | 상흑어미 |
[정의]
1983년 간행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신 유학자 최민열의 문집.
[저자]
최민열(崔敏烈)은 1896년 3월 13일 전라북도 고부현(古阜縣) 우덕면(優德面) 두지동(斗池洞)[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에서 태어나 1980년 사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구(以求), 호는 종양(宗陽)이다. 근현대 유학자로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의 제자이다. 1910년 일제가 한일합방을 실시하고 유학자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은사금을 주었는데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으며, 광복 후 『간재문집』과 스승인 김택술의 『후창문집』 발간에 정성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종양유고(宗陽遺稿)』 2권과 미간행된 ‘가례증해고(家禮增解考)’ 1질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종양유고』는 1983년에 최민열의 아들 최규홍과 후손들에 의하여 발간되었는데, 1990년 경인문화사에서 다시 김낙진의 ‘벽봉선생문집’, 한백유의 ‘오천선생유고’와 함께 묶여 ‘종양선생문집(宗陽先生文集)’이라는 이름으로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전북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서지]
『종양유고』는 활자 영인본으로 한 면은 12행 28자[한글 토를 포함]로 23㎝이며 상흑어미(上黑魚尾)이다.
[구성/내용]
『종양유고』는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은 유집, 2권은 부록으로 되어 있다.
권 1의 권두에는 김형관(金炯觀)이 1983년 쓴 서문과 최민열이 1980년 쓴 자서(自序)가 있다. 그다음으로는 목차가 있으며, 시(詩)·제문(祭文)·서(序)·기(記)·장(狀)·묘갈(墓碣)·묘표(墓表)·서독(書牘)·잡저(雜著) 순으로 되어 있다. 최민열은 428수의 시를 남겼는데, 대체로 망국의 한(恨), 우도(友道), 자면(自勉), 승경(勝景), 감회(感懷), 학문(學問)을 주제로 한 시들이 많다. 제문은 모두 4편으로 임진왜란 당시 고을 사람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서 나라에서 포상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송된 모암(慕庵) 최안(崔安)을 도계서원(道溪書院)에 봉안하는 「모암최선생봉안문(慕庵崔先生奉安文)」과 스승인 김택술을 애도한 「제후창김선생문(祭後滄金先生文)」, 김택술을 창동서원(滄東書院)에 배향할 때 축문인 「창동서원정향문(滄東書院丁享祝文)」과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도에 있는 계양사(繼陽祠)에 봉안할 때의 축문인 「후창김선생계양사봉안축문(後滄金先生繼陽祠奉安祝文)」이 있다. 서(序)와 기(記)는 각각 4편, 장(狀)과 묘갈은 각각 1편, 서독은 22편, 잡저는 24편이다.
2권은 부록으로 「김후창선생서(金後滄先生書)」를 비롯한 당시 교류한던 이들의 서독과 정인보의 시 등 34편이 있다. 만사(挽詞)는 3편이며 김형관의 제문 1편이 있다. 그리고 가장(家狀), 정남열(鄭南烈)의 「효자종양최공사실」, 김동필의 「효자종양최공가장」, 아들 최규홍의 고후(稿後)·후기(後記)·고미(稿尾)와 안호상의 고서(稿序)가 있다. 끝으로 유묵(遺墨)이 있다.
[의의와 평가]
『종양유고』에는 최민열의 사상과 의리 정신이 시에 잘 나타나 있는데, 한일합방 후 망국의 한을 읊은 「한경술염(恨庚戌炎)」·「망국한(亡國恨)」·「경술시사(庚戌時事)」·「용흥사모종(龍興寺暮鍾)」·「경술시사(庚戌時事)」 등의 시가 있다. 최민열은 일제의 은사금의 회유를 물리치고 망국의 한을 삭인 채 꼿꼿이 절개를 지킨 선비이다. 근현대에 간재 전우, 후창 김택술의 사상을 이어받으며 자주적 민족사관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던 유학자이다. 최민열의 『종양유고』는 정읍 지역의 선비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